서울시립대 학생들이 박원순 시장이 검토하겠다던 '무상 등록금' 정책을 놓고 지난 주말부터 찬반(贊反) 설문 조사를 한 결과 20일 현재 반대(64%)가 찬성(28%)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달 초 박 시장은 "내년부터 시립대 등록금을 전액 면제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학생들 반대가 많자 서울시는 20일 시립대 등록금 전액 면제 계획을 유보하겠다고 대학 측에 통보했다.
등록금이 큰 부담인 상황에서 학생들이 무상 등록금을 거부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학생들은 등록금을 아예 면제해버리면 학교 재정난 때문에 안 그래도 열악해진 학교 시설이 더 열악해질 것이고 교육 질(質)도 더 떨어질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박 시장은 앞서 2012년 시립대에 반값 등록금을 도입했다. 그로 인한 재정 압박으로 2011년 1626개이던 전체 강좌 수가 2014년 1370개로 줄었다. 100명 이상 대형 강의는 2011년 57개에서 2015년 112개로 늘었다고 한다. 시립대 기숙사 수용률은 7.6%로 전국 국·공립대 중 거의 꼴찌인 상황이다. 반값 등록금 시행으로 교육 수준이 저하되는 걸 실감한 학생들은 등록금 전액 면제로 가면 학교 꼴이 말이 아니게 돼버릴 걸 꿰뚫어본 것이다.
스위스 국민은 지난 6월 1인당 월 300만원씩 현금을 주는 '기본소득법' 법안을 부결시켰다. 공짜 복지가 국가 재정을 결딴낸다는 것을 알고 있는 스위스 국민의 선택이었다. 시립대생들 역시 이미 반값 등록금의 포퓰리즘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다는 걸 체득했기 때문에 박 시장이 제시한 유혹을 뿌리쳤을 것이다.
박 시장은 야권의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사람이다. 앞으로 선거 과정에서 '공짜 등록금'과 같은 공짜 살포 공약을 계속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능력에 넘치는 공짜 복지를 뿌리면 나라가 빚을 늘려야 한다. 그 빚은 지금 어린이와 청년들이 갚아야 한다. 미래를 위한 연구개발이나 SOC 투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활기를 잃어가는 나라에 독(毒)이 될 수밖에 없다. 다 같이 세금 냈는데 전국 수백만 대학생 가운데 왜 서울시립대생만 특혜를 받아야 하느냐는 것도 납득할 수 없다. 박 시장이 복지부 반대에도 밀어붙인 청년 수당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에 의해 거부된 공짜 등록금도 결국 국민 세금을 써서 자기 표를 매수하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