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그렛

자신에게 금융사기를 쳐 수천 유로를 뜯어낸 아프리카 청년과 처음엔 ‘사랑’에 빠지고, 정체를 안 뒤에도 그 청년과 다른 아프리카인들에게 기회의 문을 열어준 스웨덴의 한 여성을, 영국의 BBC 방송이 20일 보도했다.

미술 교사·화가·예술 치료사인 62세 스웨덴 여성 마리아 그렛은 이혼 후, 친구들의 장난으로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에 계정을 만들게 됐다. 그리고 그곳에서 '58세 덴마크계 미국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남성 조니(가명)를 만났다. 조니는 자신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자라 현재 영국에서 토목기사로 일하는 홀아비로, 아들 닉은 맨체스터대학교에 재학 중"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각국을 오가던 마리아는 조니의 영어 억양에 의문을 품기도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서로 연락한 지 3개월쯤 됐을 때, 조니는 스웨덴으로 오기로 했다. 그러나 그전에 ‘취업 인터뷰’를 위해 나이지리아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나이지리아로 떠난 조니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나이지리아에서 강도를 만나 조니의 아들 닉이 머리에 총상을 입었는데, 다 털려서 수중에 돈이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병원 측은 ‘아들 닉’이 계속 치료를 받으려면 120만원가량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는데, 조니가 이용하는 영국 내 은행은 나이지리아에 지점이 없어 계좌 이체에 많은 시일이 걸린다고 했다.

이에 마리아는 당장 은행으로 달려가 조니에게 송금했다. 그저 조니와 닉을 빨리 구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그러나 첫 번째 송금 이후로도 조니는 합병증 등을 핑계 삼아 계속 송금을 요구했고, 마리아는 이후 수백만원을 더 보냈다. 그리고 마리아는 ‘이상함’을 느꼈고, 결국 조니와 연락을 끊었다.

조니에게서 다시 연락이 온 것은 3주 후였다. 그는 마리아에게 '자백'했다. 자신은 24세 나이지리아인이며, 이메일 해킹으로 돈을 가로채는 '나이지리아발(發) 금융시가단'의 일원이라고. 2년 전 대학을 졸업했지만, 무직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고 용서를 구했다.

조니는 자신을 ‘사랑스러운 여인’에게 잘못을 저지른 ‘악마’라고 표현하며, 자신은 한 번도 마리아 같은 여성을 만난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또, 함께 사기 행각을 저지르는 친구들은 꼬리가 잡히지 않게 ‘고객’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마리아를 믿었고 계속 연락하고 싶었기에 이를 무시했다고 밝혔다.

둘의 관계는 이후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돈은 이제는 오가지 않았다. 조니가 보고 싶었던 마리아는 비자 문제 탓에 스웨덴으로 올 수 없는 조니 대신, 자신이 2009년 10월 나이지리아로 향했다.

마리아는 “공항에서 조니를 만났을 때, 조니는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에서 보낸 2주는 더없이 행복했으며, 그 기간 마리아와 조니는 연인에서 친구가 됐다. 마리아는 대다수 사기꾼으로 사는 조니의 친구들도 만났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건장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덫’에 걸리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6년 동안 마리아는 아프리카 예술가 몇몇을 유럽의 미술 전시회·워크숍·대회 등에 초대했고, 작품 발전을 돕기 위한 여러 자금도 지원했다. 그는 미술 관련 강연을 하기 위해 우간다를 방문했으며, 올해 말에는 나이지리아에 갈 계획이라고.

유럽에 온 아프리카 예술가들

어느덧 69세가 된 마리아는 어린 예술가들에게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를 제공할 수 있어 매우 행복하다고, BBC 방송에 말했다. 마리아는 “조니는 내게서 가져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나에게 줬다”며, “조니가 아니었다면 아프리카와 만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니는 마리아 덕분에 사기꾼 생활을 청산하고, 그의 지원으로 미국에서 공부해 현재는 석유 관련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은 헤어진 뒤 다시 만나지는 않았지만, 연락은 끊임없이 하고 있다.
매번 자신에게 사과하는 조니에게 마리아는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