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은 참 좋으시겠어요. 좋아하는 대중음악을 연구하셔서…."
얼마 전 특강을 마치고 나오는데, 한 학생이 이렇게 말을 건넸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연구 분야는 대중문화, 그중에서도 대중음악이다. 학교에서 담당하는 과목도 '미국 대중음악'이나 '한국 대중문화의 이해'다. 한류 현상을 이끌고 있는 K팝에 관한 단행본을 썼고, 온·오프라인 매체에 앨범 리뷰 등을 기고하고 있다. 학교 연구실 벽면도 아이돌 그룹과 영미 음악인들의 대형 브로마이드로 도배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드라마·영화·음악 같은 대중문화를 즐긴다. 돈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는 마니아도 있다. 마니아를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변형해서 이들을 '덕후'라고 부른다. 이 '덕후'들이 간혹 자신이 빠져 있는 분야를 직업으로 삼은 경우에는 '덕후'와 '직업'이 일치한다는 뜻에서 '덕업일치'라고도 부른다. 10대 시절부터 25년 이상 대중음악에 빠져 살았고, 아예 직업이 된 필자 역시 어찌 보면 '덕업일치'의 전형적인 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랑하던 분야라고 해도 직업이 되고 나면 예전만큼 순수하게 즐길 수 없다는 점이야말로 '덕업일치'의 단점이다. 음악과 관련된 일을 시작하고 의무적으로 다양한 음악을 듣고 공연을 관람하면서,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순수한 마음으로 음악을 즐기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걸 그룹 러블리즈의 세련된 노래를 들으면서도 '가수 겸 작곡가 윤상이 러블리즈의 프로듀서를 맡게 되면서 생기게 된 차별성이나 한계는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느라 이들의 노래나 춤을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식이다.
얼마 전 리뷰를 쓰기 위해 국내 재즈 피아니스트 안라라의 음반을 듣다가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10~20대 시절에 음악에서 느꼈던 감동과 즐거움을 모처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취미를 일로 삼고 있지만, 반대로 일을 취미처럼 즐길 수도 있어야 한다. '덕업일치'가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