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벌 총수 관련 형사소송에서 성적표가 좋지 않았던 김앤장이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의 17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 사건을 맡아 구속영장청구 기각을 이끌었다.

신 회장 변호인단의 한 변호사는 “변호인단이 신동빈 회장에게 불구속기소로 가닥이 잡혔다고 알린 이후에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이 지난달 29일 새벽 영장기각 후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지난달 26일 신동빈 회장에 대해 175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신 회장에 대해 친형인 신동주(62) SDJ코퍼레이션 회장, 신격호(94) 총괄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서미경(57)씨와 딸 신유미(33) 롯데호텔 고문 등이 10년간 일을 하지 않으면서 롯데 계열사로부터 500억원가량을 급여 명목으로 받아가도록 한 혐의를 적용했다.

신 회장은 롯데 계열사의 일감을 총수 일가가 개인적으로 보유한 회사에 몰아줘 770여억원의 손실을 끼쳤고, 롯데피에스넷의 주식을 다른 계열사들이 비싸게 사도록 해 470여억원의 손실을 계열사에 끼친 배임 혐의도 받았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조의연(50·사법연수원 24기)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현재까지 수사진행 내용과 경과, 주요 범죄혐의에 대한 법리상 다툼의 여지 등을 고려할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 기각했다.

◆ 검찰, “신동빈 회장이 그룹 경영 주도”...법원 설득 실패

신동빈 회장은 지난 28일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3시간 동안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참석한 뒤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가 있는 15층에서 14시간 이상을 대기했다. 조재빈 특수4부 부장과 수사검사들도 구속영장 발부 여부 소식을 기다렸다.

법원은 이날 새벽 3시50분 영장을 기각했다. 신동빈 회장은 귀가했지만 검사들은 퇴근하지 못하고 영장기각 사유 파악에 분주했다. 조재빈(46·29기) 부장은 이동열(50·22기) 3차장에게 보고하고 새벽 5시쯤 청사를 나왔다. 전국에서 가장 큰 지방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은 서울중앙지검장 아래 3명의 차장검사가 있다. 1차장은 형사부를 총괄하고, 2차장은 공안, 3차장은 특수수사를 담당한다.

조재빈 특수4부장검사는 롯데그룹 사건초기부터 주임검사를 맡았으며 신동빈 회장의 영장실질심사에서도 참석해 신 회장의 혐의를 설명했다. 조 부장검사는 삼성 비자금 특별수사에 참여하는 등 검찰 내에선 떠오르는 특수통이다.

이동열(왼쪽) 서울중앙지검 3차장, 조재빈 특수4부장

조 부장검사는 겉으로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롯데그룹을 장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신동빈 회장이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을 총괄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 부장검사는 신동빈 회장이 일본인 주주를 동원해 신격호 총괄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등 모든 계열사에서 해임하는 왕자의 난을 일으킨 점을 강조했다.

특히 롯데가 국내 언론과 일본인 주주들에게 신동빈 회장이 정책본부장과 그룹 부회장으로서 한국 롯데그룹의 경영을 주도해서 성과를 냈다고 주장하는 등 신 회장이 그룹에 미치는 영향이 컸다고도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청사

검찰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모든 M&A를 주도했다는 인터뷰 기사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며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그룹의 외형을 다섯배 키웠다는 등 대내외적으로 홍보해놓고 이번 수사에서는 그룹에 손해 입힌 결정은 모두 아버지 책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검찰은 신 회장이 의사결정을 주도했고 실행을 지시했다는 그룹 관계자 진술과 보고서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그룹 임원들이 신격호 총괄회장이 아닌 신동빈 회장에게 보고했고 가족들의 부당월급 혐의의 경우 아버지의 지시를 받은 신동빈 회장이 각 계열사에 다시 지시해 적당히 나눠 배분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법원이 많은 사람의 이해관계가 달린 대기업 경영자에겐 좀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갖고 경영하라는 취지로 수십억원 횡령 사건에서도 영장을 발부했다”고 법원에 호소했지만 법원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 김앤장 “아버지가 결정한 것 아들이 왜 책임지나” 강조해 기각 이끌어내

롯데그룹은 태평양, 광장, 세종 등에겐 검찰의 계열사 수사를 맡기고 신동빈 회장에 대해서는 김앤장을 전담으로 선임했다.

김앤장은 최근 재벌 총수 사건에서 이름값을 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횡령·탈세·배임 등 경제비리 혐의로 기소된 이재현 CJ 회장에 대한 형사소송이었다. 김앤장은 2015년 9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을 이끌었지만 같은해 12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막지 못했다.

김앤장은 신동빈 회장에 대한 변호에서 차동민(57·사법연수원 13기) 전 고검장을 필두로 최고의 인력으로 수사팀을 꾸렸다. 검찰 특수수사의 전성기를 이끈 김경수(56·17기) 전 고검장도 참여했다.

지난달 26일 검찰이 구속영장을 기습적으로 청구하기 전 변호인단은 불구속기소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변호인은 신동빈 회장과 직접 통화해 대책을 논의하면서 검찰의 사건 추이를 지켜봤다. 지난달 20일 소환조사한 뒤 6일이 지나도록 검찰이 방향을 못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호인단 중 한 변호사는 “25일 불구속기소로 가닥이 잡혔다는 보도가 있었고 검찰 내부 분위기도 다르지 않았다. 신 회장을 안심시켰지만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소환 조사 뒤 6일의 시간이 있었다. 변호인단에겐 (구속영장 청구에 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고 했다.

김앤장은 소환조사 전 부터 쌍두마차 전략을 준비했다. 통상 구속영장 실질심사는 법원 출신 변호사들이 전략을 짠다. 구속영장 발부 여부는 검찰의 논리보다 법원이 논리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법원 출신 변호사로는 백창훈(59·13기) 변호사가 나섰다. 검찰 출신 중에선 이준명(51·20기) 변호사가 역할을 맡았다.

김앤장 백창훈(왼쪽), 이준명 변호사

이들은 ‘법리적 다툼’이 많다는 점을 강조해 영장청구 기각을 이끌었다. 구속영장 발부 사유는 증거인멸의 우려와 도주의 우려 등이 주요 판단기준이지만 최근 법원이 방어권 보장과 혐의의 소명 등을 강조하는 성향을 반영한 전략이었다.

검찰이 주장하는 혐의는 신동빈 회장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신격호 총괄회장이 주도해 양형 등 법리적으로 다툴거리가 많은 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검찰이 적용한 1750억원의 횡령·배임 혐의는 신동빈 회장이 아닌 신 회장의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주도해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주장한 혐의 사실에 신동빈 회장이 아닌 신격호 회장을 주어로 넣으면 더 혐의 사실이 명확히 진다는 것이다.

서울 내자동 세양빌딩 1층 김앤장 본사간판 앞

이들은 또 신격호 총괄회장의 카리스마를 부각시켰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지시하면 신동빈 회장은 물론 신동주 전 부회장도 거역할 수 없었던 점을 법원에 호소한 것이다. 특히 부당급여의 경우 가족에게 월급을 주라는 아버지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영장실질심사 마지막에 신동빈 회장이 재판부에 최후 변론을 하게 한 것도 변호인단과 신 회장의 소통 덕분이라는 후문이다. 한 대형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는 “신 회장의 변호인단은 범죄 사실이 소명되지 않았다고 검찰을 자극하지 않았다”며 “다툼의 여지가 많으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법원을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백창훈 변호사는 1986년 서울지법에서 판사로 시작해 법원행정처 법정심의관, 서울고법 판사, 창원지법 진주지원장, 사법연수원 교수를 거쳐 2002년 김앤장에 합류했다. 이준명 변호사는 1991년 대전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해 2013년 23년간의 검사생활을 마치고 김앤장에 합류했다.

☞관련기사
신동빈 영장 기각...검찰, 무리한 혐의 적용 도마 위에<2016.9.29>
검찰 "신동빈 변명에 기초해 결정" 반발...롯데 수사 사실상 마무리 <2016.9.29>
[롯데 전방위 수사] 롯데, 사상 최대 변호인단 꾸린다...김앤장·태평양·광장·세종·율촌 등 총출동 <2016.6.15>
[법조 업&다운]⑮ "이재현 실형" 재계 얼려버린 서울고법 이원형 부장판사 vs '망연자실'김앤장 <201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