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한 교육학자가 미국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방문 전 예약을 하고 학교 벨을 누르자 교장이 직접 건물 출입문을 열고 나왔다. 손에는 두툼한 열쇠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체육관, 과학실 문을 직접 열고 닫으며 안내했다. 외부인이 보이지 않아 물어보니, 등·하교 외에는 일반인은 학교에 올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학생들 안전 지켜주는 게 우리의 책임이죠."

▶1999년 4월 미국 콜로라도 콜럼바인 고교에서 총기 사고가 발생했다. 학생 두 명이 자신을 무시하고 깔본 학생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13명이 사망했다. 사건 이후 미국 학교는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했다. 일과 시간뿐 아니라, 방과 후에도 학교 보안이 강화됐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한국은 학교 문을 열기 시작했다. 2001년 '학교 공원화사업'이 시작됐다. 공원과 녹지가 부족한 나라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서울에서만 769개 학교가 차례로 담장을 허물고 꽃밭을 가꿨다. 학교가 주민들 쉼터, 운동 공간이 됐다. 운동장은 공휴일과 명절에 주민 주차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뭐든 지나치면 문제다. 최근에 만난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교장은 화를 삭이지 못했다. "어젯밤 무슨 동호회가 밤늦게까지 운동하고 회식까지 했는지 음식물 쓰레기, 담배꽁초가 운동장에 가득해요. 아침에 등교한 학생들이 그 쓰레기를 줍는 모습을 보니…." 실제 일부 학교는 월요일마다 운동장 쓰레기와 전쟁을 벌인다고 한다. 잊을 만하면 발생하는 학교 내 외부인 범죄는 학부모 마음을 섬뜩하게 한다.

▶이달 초 서울시의회에서 학교 시설을 시민에게 개방하는 것을 학교장 책무(責務)로 규정한 조례가 통과됐다. 그러자 일선 학교장들이 "학교 와서 한번 보라. 명령 따를 수 없다"고 버틴다. 교총에 접수된 학교 개방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2년간 118건에 이른다. 음식 해 먹으려고 학교 창고에 LPG 통을 숨기고, 소년체전 준비하는 초등학생을 운동장에서 내쫓은 어른들까지 있다고 한다.

▶우리 여건에서 운동장 개방을 당장 중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저녁 무렵 학교 트랙을 도는 노(老)부부의 소소한 일상도 보장받아야 한다. 일본·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도 학교 체육관·운동장을 지역주민과 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학생들 안전을 고려해 외부인의 동선(動線)과 출입구를 철저히 분리·운영한다. 주민을 배려하되 학교에서 술 마시고 쓰레기를 버리는 이용자가 적발되면 강력히 처벌하는 제재 방안이 함께 마련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