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성수기 영화 시장은 1100만명을 넘긴 '부산행'을 비롯,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 등 국산 영화의 잔치판이었다. 가요와 드라마는 '한류'라는 이름으로 세계에서 새로운 유행을 이끌고 있다. 한국 대중문화가 개방의 위기를 넘기면서 어떻게 지금까지 성장해올 수 있었는지, 그 역전의 드라마를 다시 쓴다.

① 영화
올여름 관객만 3600만명… 한국 영화가 완승한 이유는

또 '한국 영화의 해'였다. 올여름 성수기 영화 시장은 국산 영화의 잔치판이었다. 국내 4대 배급사 NEW·CJ E&M·롯데엔터테인먼트·쇼박스가 개봉한 한국 영화 네 편이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이 중 NEW의 '부산행'은 관객 1156만명을 동원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여름 극장가 성수기인 7~8월 총관객 수는 5568만2836명이다. 이 중 한국 영화가 차지하는 관객 수는 3611만6962명으로 전체 관객의 65%를 차지한다. '제이슨 본'과 '수어사이드 스쿼드'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의 대결에서 완승을 거뒀다.

명량

한국 영화의 강세는 올여름에만 국한한 현상이 아니다. 한국 영화 점유율은 2011년 이후 지금까지 50%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다. 미국 직배사 영화에 떠밀려 한국 영화가 망한다며 극장에 뱀을 풀었던 때가 1989년, 영화인들이 길거리에서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를 벌이던 것이 1999년이다. 그동안 한국 영화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대기업 뛰어든 영화 시장, 경쟁력 강화

1990년대 삼성, 대우 등에 이어 2000년대에는 CJ, 롯데, 오리온 등의 투자가 이뤄졌고, 영상전문투자조합이 결성되어 투자 가능한 자본의 크기가 커졌다.

90년대부터 활동한 한 중견 제작자는 "CJ E&M이나 롯데와 같은 대기업이 들어오면서 영화 제작 방식이 체계적으로 변했고, 예산 운영이 투명해진 것도 부인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 영화 제작에 막 뛰어든 할리우드 직배사까지 본격적으로 경쟁 구도에 진입하면, 관객이 선택할 수 있는 작품의 폭은 더 다양해진다.

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 영화 사진

[워너·폭스… 美 직배사도 한국영화 제작 나서]

◇영화계 전문 인력과 30대 관객의 등장

영화 전문 교육기관이 늘어나면서 영화계 전문 인력이 늘어난 것도 한국 영화의 질(質)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영화진흥위원회가 1984년 설립한 한국영화아카데미는 2009년부터 장편영화 제작 과정을 도입, 졸업생들이 장편영화를 만들도록 했다. 이때 배출된 신인 감독이 조성희('늑대소년'), 윤성현('파수꾼'), 허정('숨바꼭질'), 홍석재('소셜포비아'), 안국진('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등이다. 1995년 설립된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배출한 나홍진('추적자' '곡성'), 조의석·김병서('감시자들') 등도 최근 한국 영화에서 비중 있는 감독이 됐다.

원동연 영화제작자협회 부회장은 "감독뿐만 아니라 미술, 촬영, 조명, 의상 등 현장 인력들이 상향 평준화됐다. 영화계에 표준 계약을 도입한 이후 제한된 시간 안에서 일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이들이 준비와 연구를 철저히 해온다"고 했다. 표준 계약이란 2011년 5월 영화산업협력위원회가 제작 현장의 처우를 개선하고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만든 매뉴얼이다.

지난 5년간 극장가의 변화 중 하나가 30대 이상의 관객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중장년층은 '명량' '국제시장'과 같은 한국 영화의 흥행을 견인했다.

국제시장

◇'대박 영화'에만 쏠림 심해

한국 영화가 선전하면서 10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대박' 영화는 늘었지만, 300만~500만 관객이 보는 '중박' 영화가 줄어든 것도 아쉬운 점이다. 지난해 여름 성수기엔 '1000만 영화'가 두 편이 나왔지만 지난해 개봉한 한국 영화 232편 중 상업 영화(스크린 100개 이상에서 개봉해 투자 수익성 분석의 조사 대상이 되는 영화) 73편의 투자 수익률은 -7.2%였다. ▶기사 전체 보기

[올여름 한국 영화 빅4, 최종 승자는?]

 ② 웹툰
웹으로 뛰쳐나온 만화… 세계로 화폭을 넓히다

"한국 만화 다 죽어가고 있다." 10년 전, 서울 코엑스에서 '2006 산다! 우리만화' 전이 열렸다. 불법 스캔과 도서 대여점 난립으로 위기에 처한 한국 만화계의 현실을 진단하고 부흥을 기원하는 행사였다. 당시 만화가들은 "출판사나 작가 모두 붕괴 직전"이라고 호소했다. 10년이 지난 현재, 한국 만화계는 사상 최고의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종이에서 디지털로 이동해 웹툰으로 진화한 한국 만화는 차세대 문화 산업의 기수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웹툰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5년(4360억원)까지 하락세를 보이던 전체 만화 시장 규모는 2012년 7600억원으로 증가해 배 가까이 성장했다. 지난해 KT경제경영연구소는 2020년까지 웹툰 시장 규모가 1조원 이상이 되리라 전망했다.

조석'마음의소리'

◇종이→화면, 유료→공짜, '판' 뒤집자 길 열렸다

2003년 포털사이트 다음을 통해 본격 개막한 웹툰 시장은 'PC'와 '공짜'의 파격으로 시작됐다. 만화 컷을 세로로 배열해 마우스 스크롤로 내리며 소비하는 새로운 스타일은 PC 환경에 최적이었다. 지난달 방한한 미국 만화이론가 스콧 매클라우드는 "한국 웹툰의 세로 형식은 혁신 그 자체"라며 "웹의 무한한 화폭(infinite canvas) 덕에 공간 제약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웹툰이 인기를 끌면서 일부 유명 작가는 회당 500만원 이상을 받게 됐고, 연 10억원 가까이 버는 작가도 등장했다. 원고료, 광고료, 2차 콘텐츠 관련 수익 등을 통한 부가 수익도 크게 늘었다.

◇칸이 비좁다… 무한 확장하는 만화

만화 분야에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는 이미 구문(舊聞)이다. 만화 원작 첫 케이블 드라마 OCN '키드갱'(2007) 이후 수많은 작품이 TV와 극장에서 대박을 터뜨렸다. 2013년 만화가 정연식은 본인의 웹툰 '더 파이브'를 영화화했고, 2014년 '미생'의 대성공을 경험한 윤태호는 "웹툰 플랫폼은 이미 드라마·영화 등 수많은 매체와 이해 관계자의 공간이 됐다"고 말했다. 연예기획사 판타지오는 아이돌 웹툰 출시 뒤, 웹툰 속 등장인물을 실제 아이돌로 만들어 데뷔시키는 시도를 감행했다.

◇한국이 좁다… 만화 한류(韓流) 새 바람

웹툰 업체들은 미국과 일본·중국 등 글로벌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NHN이 만든 코미코는 2013년 일본에 처음 진출한 뒤 현지 웹툰 플랫폼 1위에 오를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다졌다. 레진코믹스는 북미 사이트에서 결제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올해 들어 활발하게 현지화를 시도하고 있다. 펀툰엔터테인먼트는 지난 6월 중국 바이두 애니(Baiduani)그룹에 웹툰 60편을 수출하기도 했다. 인도네시아·태국·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도 한국 웹툰의 새로운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기업들도 바빠졌다. KT는 지난 5일 기존 '올레마켓웹툰'을 확대 개편한 '케이툰'을 새로 출시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웹툰 사업 부문을 별도로 떼어내 '네이버웹툰'을 설립했고, 다음도 지난 1일 '다음웹툰 컴퍼니'를 설립했다. 기획 단계부터 하나의 소재로 웹소설·웹툰·웹드라마를 동시에 제작하기도 한다. 카카오페이지가 웹소설을 웹툰으로 옮겨 중국 포털사이트 QQ닷컴에 수출한 '왕의 딸로 태어났다고 합니다'는 일일 유료 차트 1위, 베스트셀러 만화 1위, 최단 기간 1억 뷰를 돌파했다.

◇외형 확장… 내실 가다듬을 때

현재 웹툰 제공 업체는 포털 및 유료 사이트를 포함해 47개에 달하고, 지난해 상위 5개 사(社)를 합산하면 웹툰 회원은 1000만명에 육박한다. 너도나도 웹툰 사업에 뛰어들면서 독자 확보를 위한 선정성 경쟁 심화와 업체 난립에 따른 콘텐츠 부실도 우려된다. 웹툰산업협회 임성환 이사장은 "비슷비슷한 작품으로 이뤄진 과잉 공급 시장이 돼 갈 우려가 있다"면서 "장르 다변화와 작품성 유지가 뒷받침돼야 현재의 위상이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 전체보기

[줄줄이 이슈-웹툰③ '분별이 필요하다']

 ③가요
'J팝'과 맞서 경쟁력 쌓은 아이돌… 세계 무대 흔들다

서울 강남구 SM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는 매주 신곡이 100곡씩 쌓인다. 국내 작곡가의 곡만이 아니다. 스웨덴·덴마크·네덜란드·영국·프랑스·미국 등 세계 음악계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700~800명이 신곡을 보내온다. SM엔터테인먼트에서 가수 발굴과 신곡 채택을 전담하는 4팀 30명이 이 곡들을 놓고 3차례에 걸쳐 심사를 벌인다. 최종 심사에는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도 참여한다.

지난해 12월 중국 난징(南京)에서 열린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콘서트. 최근 아이돌 음악은 세계적 작곡가들이 제작 단계부터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엑소와 춤을… 강남, 한류메카로 만든다]

SM엔터테인먼트는 국내외 유명 작곡·작사가들과 네트워크를 만들고, 이들과 협업을 통해 신곡을 만드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른바 'SM 송라이팅 캠프(Songwriting Camp)'다. 올겨울 발매 예정인 인기 아이돌 그룹 EXO 음반에 담기는 재즈풍 신곡은 스웨덴 작곡가와 작업하고, 리듬 앤드 블루스(R&B) 스타일의 노래는 미국 작곡가와 협업하는 식이다. 이성수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싱본부장은 "매년 4000~5000곡을 듣고 평가하다 보면, 폭넓은 음악적 색채를 만드는 데 톡톡히 도움이 된다"면서 "최근에는 일본·중국 작곡가 발굴이나 협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1996년 데뷔한 H.O.T.와 1997년 젝스키스 등 '1세대 아이돌 그룹'이 탄생한 지도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빠르고 화려한 댄스음악과 역동적인 군무(群舞) 중심의 아이돌 음악이 대중음악계 판도를 바꿀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정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4차례에 걸쳐 일본 드라마와 만화, 가요 같은 대중문화 규제를 풀었다. 당시에는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하면 한국 가요 시장은 'J팝'으로 불리는 일본 가요에 침식되고 말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한국 가요계는 2010년 이후에도 매출액과 수출액에서 매년 10% 이상씩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비좁은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일본·중국·동남아는 물론 미국과 중남미, 유럽까지 세계로 무대를 넓힌 역발상 덕분이었다.

[유럽 팬들 "우리 오빠들"… 파리의 밤은 韓流의 밤]

["너네 한국말 알아?" 외치자… 美 관객들 "예!"]

한국 가요계가 'K팝'이라는 브랜드를 통해 세계 진출에 성공한 비결로는 '세계화 전략'이 첫손으로 꼽힌다. 중국인(에프엑스의 빅토리아, 미쓰에이의 페이 등)과 일본인(M.I.B의 강남 등), 태국계 미국인(2PM의 닉쿤) 등 아이돌 멤버들의 국적(國籍)만이 아니라 작곡·작사가들까지 철저하게 '글로벌 시장'을 지향한 것이야말로 세계 진출의 동력이 됐다는 분석이다.

[조회 수 1300만… 중남미 '韓流 갈증' 풀어주는 유튜브 스타]

제작 과정부터 세계화를 지향하다 보니, '아이돌 음악은 댄스 뮤직뿐'이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도 흔들리고 있다. 발라드와 록, 힙합과 R&B, 심지어 트로트까지 아이돌 음악의 장르도 다양해졌다.

아이돌 음악이 급속하게 팽창하다 보니, 자작곡을 노래하는 포크·발라드 계열의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나 인디 음악의 상대적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난해 콘텐츠 산업통계 보고서가 대표적인 예다. 이 보고서는 "실제로 SM과 YG로 대표되는 대형 기획사와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의 업체들이 음악 시장을 50% 이상 장악한 채 독점에 가까운 형태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중요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규탁 교수는 "아이돌 중심의 대형 기획사와 인디 음악의 독립 기획사들이 적절한 공존·협력 모델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사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