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충북 청주시 오송읍 식품의약품안전처 실험동물 사육실. 멸균복을 입고 들어가니 위생 마스크를 뚫고 동물 냄새가 코를 찔렀다. 26㎡(약 8평) 넓이 방 좌우에 5단짜리 철장이 3개씩 있고, 각 선반엔 길이 5~6㎝의 검은색 실험 쥐 2~10마리가 들어간 가로·세로 50㎝짜리 투명 우리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총 200여 개의 우리 안에서 1000여 마리 쥐가 톱밥 사이를 사삭거리며 돌아다녔다. 갓 태어난 새끼 쥐들은 어미 쥐의 젖을 빨고 있었다. 옆에 있던 조영민 식약처 보건연구사는 작은 소리로 "실험용 쥐 중 보기 드문 국내산 토종 쥐"라며 "새끼 쥐가 놀라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되니 소독 장갑을 꼈어도 만지지 말라"고 말했다.

지난 13일 충북 청주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국산 실험 쥐를 들어 보이고 있다. 식약처 측은 “우리 쥐가 외국 쥐 못지않은 유전적 안정성을 가지고 있다는 걸 후속 연구로 밝히겠다”고 말했다.

외국산 실험 쥐를 쓰며 연간 100억원 넘는 돈을 외국에 로열티로 지불하는 국내 실험 쥐 업계에 국산 실험 쥐가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지난 20여 년간 식약처를 비롯한 여러 연구소·기업에서 교배나 유전자 조작을 통해 꾸준히 국산 실험 쥐를 개발해 왔고, 그중 일부는 유전자 변형 실험 쥐 판매로 연간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학계에선 아직 미국·일본 등 외국산 실험쥐를 선호하고 있으나, 제약회사나 일부 연구소를 중심으로 국산 실험쥐의 판로가 개척되고 있다. 국내 생명공학 관계자들은 "실험쥐의 국산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 5월 식약처는 외국산 실험 쥐를 30세대 이상 교배시켜 유전자 구조가 달라진 실험 쥐 2종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국제적 권위를 가진 미국 실험동물연구소(ILAR)에 별도의 코드로 등록했는데, 한국산 실험동물(Korean laboratory animal)이라는 의미에서 둘 다 영문 코드명에 'Korl'자를 넣었다. 민간 실험 쥐 생산 업체에 기술이전료를 받고 쥐 샘플을 넘기기도 했다. 지난 1995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처음으로 교배를 통해 국산 실험 쥐를 개발한 이후 국산 실험 쥐를 교배 개발해 상업화한 첫 사례다.

국내에서 연간 소비되는 약 440만마리의 실험동물 중 84%인 370만마리가 쥐다. 시장 규모는 500억~600억원으로 추산된다. 세계 실험 쥐 산업 규모는 11억달러(약 1조 2000억원) 정도다. 의약계에서 실험 쥐를 많이 쓰는 이유는 사람의 유전자와 95% 같고 1회 번식에 10마리 이상 새끼를 낳으며 유지비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쓰이는 실험 쥐 거의 전부가 외국산 실험 쥐다. 생명공학 선진국인 미국·일본의 실험 쥐들이 50년 넘는 세월 동안 세계 연구계를 장악해 오면서 학술적 실험의 표준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쥐를 직수입하거나 외국의 쥐 생산 기업과 계약한 국내 생산 업체가 쥐 샘플을 들여와 대신 번식시키고 총 매출액의 20% 정도를 로열티로 지불하는 형태다. 수입된 쥐는 새끼를 낳아 대를 잇더라도 계속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식약처는 연간 120억원가량이 외국에 로열티로 지불되는 것으로 추산한다.

실험 쥐 종류엔 일반 실험 쥐와 질환 모델 실험 쥐가 있다. 질환 모델 실험 쥐는 일반 쥐의 유전자를 바꿔 태생적으로 암·당뇨·비만 등에 취약하게 만든 것이다. 일반 쥐는 교배를 통해 새 품종을 개발하고, 질환 모델 쥐는 유전자조작 기술을 통해 개발한다. 가격은 일반 쥐가 마리당 3000~5000원 수준, 질환 모델 쥐는 유전자조작 기술 수준에 따라 수만원에서 수천만원에 이른다. 예를 들어 유전자조작을 통해 사람의 간이 안정적으로 이식된 쥐는 400만~500만원에 팔린다. 국내에선 아직도 제약회사를 중심으로 일반 실험 쥐가 70% 이상 쓰이고 있지만, 영국 등 생명공학 선진국에선 5년 전부터 질환 모델 실험 쥐를 더 많이 쓰고 있다. 고급 연구를 하는 데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식약처는 재작년부터 3년간 총 34종의 질환 모델 실험 쥐 개발에 성공했다.

고급 상품인 질환 모델 실험 쥐를 수천 종 개발·판매해 높은 매출액을 올리는 바이오 업체도 있다. 지난 1997년 설립된 업체 '마크로젠'은 국내에서 독보적인 유전자 변형 쥐 개발 회사다. 설립 후 지금까지 연평균 100종 이상의 질환 모델 쥐를 개발해 왔다. 쥐 판매로 올리는 연 매출이 수십억원이고, 2002년부터는 미국·일본 등으로 역수출하기도 했다. 고유석 마크로젠 이사는 "연구소에서 의뢰를 받아 주문 제작하는 방식인데 샘플 한 마리에 수천만원 하는 쥐도 있다"며 "동물 전문 택배 회사에 맡겨 미생물이 침투할 수 없는 특수 박스에 담아 항공편으로 수출된다"고 말했다.

일선 연구자나 제약회사 관계자 다수는 국산 쥐를 실험에 쓰는 데 아직 소극적이다. 논문 작성이나 신약 개발에는 신뢰도가 중요한데, 세계 학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기관에서 개발한 실험 쥐는 그 유전적 안정성이 의심받기 쉽기 때문이다. 한 의대 연구소 관계자는 "수십 년 동안 미국·일본 쥐를 토대로 쌓인 연구 데이터가 있는데, 이전 데이터와 얼마나 호환될지 모르는 국산 쥐로 연구를 수행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1995년 KIST가 개발했던 실험 쥐도 10년 정도 시중에서 팔리다가 외국 쥐에 밀려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실험 쥐 연구 단체인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KMPC)의 성제경 단장은 이에 대해 "인간 유전자의 신비를 밝혀내기 위해 실험 쥐는 없어서는 안 될 학술 자원"이라며 "국내 실험 쥐 시장은 10년 내 적어도 5배 증가할 것이며 그중 국산 실험 쥐 점유율을 5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당면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