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림픽은 올림픽과 같이 4년에 한 번 열리는 최고의 장애인 스포츠 제전이다. 세계가 주목하는 대회라곤 해도 기록이나 주목도 면에서 올림픽과 비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리우패럴림픽 육상 경기에선 패럴림픽 선수들이 올림픽 참가자들을 능가하는 결과를 내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알제리의 아브델라티프 바카(22)는 지난 12일(한국 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육상 남자 1500m 결선 경기에서 3분48초29의 세계 기록(T13 등급)으로 우승했다. 2~4위 선수도 3분50초 안쪽으로 결승선을 끊었다. 이는 지난달 같은 트랙에서 열린 올림픽 1500m 경기 금메달리스트인 매슈 센트로위츠(3분50초00)보다도 빠른 것이다. 장애인 러너 4명이 세계 최고 엘리트 선수들이 경쟁하는 올림픽 같은 종목 금메달리스트보다 더 빠르게 달렸다.
패럴림픽 육상 트랙에서 열리는 시각장애 종목은 장애 정도에 따라 T11~T13 등급으로 나뉜다. T11 출전 선수는 거의 앞을 못 보기 때문에 가이드와 함께 달리게 되며, T13은 장애가 덜해 가이드 없이 혼자 달린다.
하지만 T13 선수들의 시력도 일반인의 10% 수준이고 시야도 좁아 반경 20도 미만밖에 볼 수 없다. 흐릿한 눈으로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선수들이 올림픽 우승자를 능가했다.
이날 우승한 바카는 800m와 1500m가 주종목이다. 2012년 런던에선 800m 금메달을 땄다.
그는 경기 직후 "그동안 리우패럴림픽을 위해 쉬지 않고 훈련했고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이날 동메달을 따낸 케냐의 헨리 키르와는 은퇴하고도 남을 만한 나이인 43세였다. 그도 올림픽 우승자보다 0.41초 빨리 달렸다.
외신들은 이에 대해 '패럴림픽의 역설'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올림픽 메달에는 최고의 명예가 걸려 있지만, 이 때문에 선수들이 기록보다는 순위에만 더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다. 올림픽 육상에서 좀처럼 세계신기록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의미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 우승한 센트로위츠의 1500m 기록은 올 시즌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한다. 압도적으로 치고 나오는 선수가 없는 가운데 선수들이 결승선 500m 이전까지 눈치 보며 달려 외신으로부터 "메달 전략이 개입된 달팽이 경주"라는 혹평도 받았다. 센트로위츠의 리우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려면 84년 전인 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최근의 이런 '눈치 보기 레이스' 경향 때문에 올림픽 육상 경기의 박진감이 떨어지고, 선수들도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기보다 메달 따기에만 열중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에 시각장애인 선수들은 앞만 보고 달린다. 시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며 '눈치 보기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초반부터 자신이 가진 온 힘을 다해 뛴다.
한 육상 전문가는 "어떤 면에서는 패럴림픽에 출전한 장애인 선수들이야말로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진짜 레이스를 한다"며 "올림픽 엘리트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