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팔 끓는 ‘가마솥 더위’에 내 속도 같이 끓었다. ‘길거리에 다니는 저 젊은 아가씨는 왜 이렇게 예쁜 것인가’, ‘저 아가씨가 입은 원피스와 구두는 정말 환상이지만 나는 꿈도 못 꾸겠지’ 같은 자괴감과 푸념이 내 속을 더 끓게 했다.
올해 결혼과 임신이라는 큰 변화를 한꺼번에 겪으면서 아가씨에서 아줌마가 됐다.
겉모습 뿐만이 아니었다. 기자로서 어느 누구보다도 자부심과 자존감이 컸던 나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동력과 열정이 떨어지면서 ‘헤어나올 수 없는 슬럼프’ 비슷한 것을 겪고 있다. 동료, 선후배들의 배려를 받고 있지만, 주어진 몫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자책이 폭염과 함께 나를 짓눌렀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에야 친구가 추천해 샀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꺼내 들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실상 내지는 그의 소설 쓰는 방식·자세 등이 궁금했던 것은 아니었다. 소설가와 기자는 (마감 주기나 소재 등은 완전히 다르지만) 글을 쓰는 직업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비슷한 면이 있고, 그렇다면 이 장수 소설가의 에세이를 통해 지금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책 속 무라카미 하루키는 ‘장인 정신’으로 요약됐다. 그는 벼락치기 식으로 원고를 마감하는 법이 없었다. 매일 원고지 20매씩 5시간 동안 꾸준히 글을 썼다. 글이 완성되면 서로 엉킨 스토리는 없는지 고치고 또 고쳐 출판사에 냈다. 그 이후에도 고치는 작업은 여러 차례 이어졌다.
마라 토너처럼 지구력을 요하는 장편 소설가의 업을 이어가기 위해 꾸준히 달리며 기초 체력을 다지기도 했다. 내면 속으로 조용히 들어가 글에 쓸 재료들을 차곡차곡 담아나가는 것도 그가 수십년 슬럼프 없이 소설을 써 내려가는 동력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오는 작품에 그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것이 문학계의 인정을 받든, 안 받든 상관 없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있어 소설은 자기 치유였고 자기 만족이었다. 물론 그것이 독자에게 영향을 미쳤을 때 그 감정은 독자에게로 전이됐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가 된 것은 많은 독자들이 그의 이야기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른바 ‘직업적 글쓰기’에 그치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것이다.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한 기초 체력 다지기, 원칙 세우기, 이를 통한 자기 치유·만족 같은 요소가 완전히 빠져있다. 상황 탓, 체력 탓 따위는 집어치우고 얼마나 절실하게 기자가 되고 싶었는지, 어떻게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를 고민하라고 하루키는 말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슬럼프를 겪거나 자괴감에 빠져 있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꼭 글과 관련된 업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좋다. 이 책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힌트를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