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12일 괌의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이륙하지 못했다. 기상 악화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은 B-1B 2대를 경기도 오산기지 상공으로 보내 북한의 5차 핵실험에 대응한 무력시위를 벌일 예정이었다. 이륙은 13일로 연기됐다. 이대로 전개된다고 해도 북의 핵실험 나흘 만이다.
이날 민간 항공기는 괌 공항을 예정대로 이륙했지만 민간 공항과 달리 당시 앤더슨 기지엔 강한 옆바람이 불었다. 물론 실제로 전쟁이 일어났다면 위험을 감수하면서 작전을 전개했을 것이라고 한다. 이번 일을 북핵 위협에 대한 미국의 안이한 인식 탓이라고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미국은 북한이 핵·미사일로 위협할 때마다 전략폭격기, 스텔스 전투기, 항공모함, 핵잠수함을 한반도로 전개해 북한에 경고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무력시위에 겁을 먹고 핵 도발을 멈출 북이 아니다. 미국 핵우산 자산의 한반도 전개는 이제 쇼가 아니라 일상적 훈련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게 더 대북 억제 효과를 가질 것이다. 우리 국민도 때마다 전시성으로 왔다 가는 미군 전략 자산을 보고 안도하는 단계는 지났다.
미 폭격기가 바람 탓에 이륙하지 못했다는 것이 주요 뉴스가 되는 상황을 보면서 미국만 바라보아야 하는 우리 처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 군이 내놓은 한국형 미사일방어나 선제 타격, 평양 초토화 등은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근본적 한계를 안고 있는 대책들이다. 여전히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대북 확성기 방송과 같은 심리전뿐이다.
오늘도 정치권은 북핵 대응법을 놓고 마치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싸우고 있다. 제 나라 지키는 일을 남에게 맡기고 안보를 정쟁 수단으로 삼는 나라는 언젠가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