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7일(현지 시각) 33분간 만났다. 국제회의 기간에 잠시 짬을 내서 만나는 회담이라는 한계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큰 진전보다는 어렵게 만든 관계 개선의 발판을 한 번 더 굳히자는 취지의 만남이었다. 두 정상은 이날 "작년 12월 28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계기로 양국 관계에 긍정적 모멘텀이 형성된 만큼 미래 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일(현지 시각) 라오스 비엔티안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누구?]

박 대통령은 회담에서 "작년 말 위안부 합의 이후 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있다"며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는 한·일 양국 모두에 심각한 위협이다. 북한 도발에 대한 대응은 물론이고 북한 비핵화 달성을 위해 양국이 더 긴밀하게 협력하자"고 했다. 아베 총리도 "일·한 신(新)시대로 가고 싶다"고 했다. 이날 회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양국 간 공조 강화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안보 문제를 고리로 양국 관계를 개선해 가자는 뜻이 담겨 있다는 해석이다. 청와대는 이날 "양국 정상은 지난 5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한·미·일 3국이 공조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북한 규탄) 언론 성명을 신속히 채택한 것처럼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을 포함해 북한 핵·미사일 도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미·일 3국이 강력하게 공조해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에 따라 지난달 31일 10억엔(약 108억원)을 송금한 '화해·치유 재단'을 언급하고 "'화해·치유 재단' 사업을 통해 피해자 분들의 명예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가 하루속히 이뤄질 수 있도록 협력해 나가자"고 했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작년 11월 2일 청와대에서 처음 정상회담을 한 이후 이번이 세 번째 회담이다. 첫 회담 때는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이슈가 핵심 주제였다. 이 회담은 3년 6개월 만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이었다. 하지만 당시 양 정상은 위안부 문제 해결책을 내지 못하고, 냉랭했던 양국 관계 복원의 불씨만 살려 놓았다. 이어 작년 12월 28일 양국 정부는 외교장관 회담에서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다. 올 1월과 2월에는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해 두 정상이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이후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지난 3월 31일 미국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 계기에 정상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이때 북핵 문제를 집중 협의하고 긴밀히 협력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어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이날 세 번째 회담에서도 한·미·일 간 북핵 공조를 재확인하고, 한·일 간 협력 강화에도 공감했다. 작년 말을 기점으로 한·일 관계가 조금씩 복원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양국 관계가 당장 좋아질지는 미지수다. 아베 총리가 이날 회담에서 "소녀상 문제를 포함해 (위안부)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기 위한 노력을 부탁한다"고 소녀상 철거 문제를 언급한 것은 양국 갈등의 불씨다. 양국 합의문에는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점을 인지하고, 한국 정부로서도 가능한 대응 방향에 대해 관련 단체와의 협의 등을 통해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돼 있다. 일본은 이를 소녀상 철거 합의라고 주장하고, 한국은 합의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아베 총리는 앞으로도 '합의문대로 이행하라'고 여러 번 주장할 것이기 때문에 두고두고 양국 갈등 요인이 될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회담에서 소녀상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박철희 서울대 교수는 "당분간 한·일 관계는 아주 화창하지는 않더라도 비는 내리지 않는 '흐림'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며 "다만 위안부 합의 결과에 대해 국내에서 비판의 목소리도 있어 우리 정부가 정치적 부담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올해 말 일본에서 한·중·일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일본 교도 통신은 아베 총리가 한·중·일 정상회담에 맞춰 일본을 방문해달라고 요청했고, 박 대통령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보도했다. 한·중·일 정상회의는 2012년 중국에서 5차 회의가 열린 뒤 한동안 중단됐다가 작년 11월 서울에서 6차 회의가 개최되며 재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