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이별 | 류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59쪽 | 8000원
마누라가 유방 확대 수술을 했다. 시인은 어느 날 아침 석 달 만에야 그걸 우연찮게 발견하고는 "유방 큰 애인과 유방이 커서 울며 살았다는 이영자와 조선 막사발"을 떠올리며 "똑바로 눈을 뜨고 마누라의 정면을 바라보지 못하는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곤 여기에 떡 하니 '인문학적 고뇌'라는 제목을 붙인다.
시인 류근(50)씨가 2010년 '상처적 체질' 이후 6년 만에 새 시집을 내놨다. 스스로 '삼류 통속 연애시인'이라 자칭하듯, 수록작 대부분이 애인에게서 비롯된 짓궂은 농담으로 질펀하다. 오래된 애인을 둔 시인은 "아내 몰래 7년을 끌어온 연애"('아슬아슬한 내부')를 고백하거나, 콩국수를 먹으며 "자꾸 이혼하자고 한다"('콩가루 생각')는 아내를 떠올리는 식이다.
시는 어렵지 않게 읽힌다. 난해하고 자폐적인 이른바 '개폼' 대신 일상에 대한 해학적 형상화로 가득하다. 문학평론가 홍정선씨는 이번 시집에 대해 "저자의 관심사는 모두에게 익숙한 연애, 추억, 음주, 육체와 관련된 일상적 사건"이라며 "철조망 친 사유지가 아닌 사방 트인 공원처럼 우리의 산책을 반긴다"고 평했다.
자꾸 장난만 치면 애인이든 친구든 쉽게 질리는 법. 퇴직을 앞둔 사내의 심정을 나무에 빗댄 시 '11월' 이나, 찬바람에서 우주적 이별의 기척을 발견해내는 '가을이 왔다'처럼, 짧지만 사유의 시간을 깊게 하는 작품도 여럿 실렸다.
인기 방송인 겸 페이스북 스타다운 소식도 들려온다. 책이 출간된 게 지난 31일인데, 주문 폭주로 사흘 만에 중쇄에 돌입해 벌써 6000부를 찍어냈다고 한다. 옛 애인을 뿌리치고 차갑게 달려나가는 이 계절이 시집을 호출한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