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9일 직장인 정모(여·31)씨는 경기 부천에 있는 성형외과에서 얼굴 윤곽주사를 맞았다. 볼살이 처졌다는 의사 말을 듣고 40만원을 내고 보톡스 주사와 함께 받은 시술이었다. 한 달 뒤 정씨의 왼쪽 볼살엔 커터칼로 베어낸 것 같은 길이 4㎝ 정도의 주름이 졌다. 주름 옆 살은 푹 꺼져 있었다. 생리도 불규칙해져 2주 이상 하혈이 이어졌다. 항의하러 병원을 찾은 정씨에게 병원측은 "부작용은 아니고 윤곽주사에 들어간 스테로이드 성분 때문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싸게 해 줄 테니 움푹 들어간 부분에 필러 주사를 놓자"고 재시술을 권했다. 정씨는 이 제안을 거부하고 한국소비자원에서 피해구제 상담을 받았다.
손쉬운 살 빼기 방법으로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 끌고 있는 윤곽주사가 건강한 피부를 함몰시키고 생리 주기를 바꾼다는 피해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일부 윤곽 주사액에 있는 스테로이드 성분이 지방·피부 세포를 과도하게 축소하고 몸의 호르몬 체계를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병원에 보상을 요구해도 병원 측은 의료 과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지난 3월 서울 사당동 한 병원에서 종아리 윤곽주사를 맞고 종아리 3군데에 살 파임 증상이 나타났다는 권모(29)씨는 "계속되는 하혈로 산부인과에서 암 검사·초음파 검사를 하느라 20만원 이상 썼지만, 주사 맞은 병원에선 한 푼도 못 받았다"고 말했다. 성형·미용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엔 윤곽주사 부작용에 대한 글이 꼬리를 물고 올라온다.
스테로이드는 원래 우리 몸의 과도한 면역반응을 진정시켜주는 약품이다. 예를 들어 원형탈모증이 생긴 두피에 스테로이드를 소량 주사하면 증상이 완화된다. 다만 세포의 크기를 쪼그라뜨려 두피가 움푹 파이는 단점이 있다. 수년 전부터 일부 피부과·성형외과는 이 단점을 역으로 이용해 돈을 벌고 있다. "날렵한 윤곽을 만들어준다"며 몸의 피하지방에 다른 지방분해 성분과 함께 소량의 스테로이드를 주사해 온 것이다. 주름살을 펴는 보톡스 주사, 윤곽을 도톰하게 만드는 필러 주사와 같이 쓰이는 경우가 많다.
민병두 대한미용성형외과학회 이사(성형외과 전문의)는 "스테로이드가 세포를 작게 찌부러뜨리는 힘이 강하기 때문에 미용 의료계에서 선호되지만, 피부가 영구적으로 움푹 꺼지거나 괴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윤곽주사는 맞는 부위에 따라 달걀주사(얼굴을 달걀형으로 만들어준다는 뜻), 걸그룹주사(허벅지·종아리를 날씬하게 만들어준다는 뜻), 승무원주사 등 다양한 별칭으로 불린다.
윤곽주사는 함유된 스테로이드의 총량이 많고 그 농도가 진할수록 부작용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용량·농도에 대한 안전 기준이 없다. 서울 서초동 한 성형외과 원장은 "트리암시놀론(스테로이드의 일종) 1㏄짜리 앰풀을 식염수 500㏄에 희석하는 것이 안전하다"며 500:1의 희석 비율을 주장했다. 반면 청담동의 한 피부과 원장은 "안면 윤곽주사는 보통 4~5:1의 비율이 적당하다"고 말했다. 병원에 따라 100배가 넘는 농도 차가 있는 것이다. 한 번에 스테로이드를 얼마나 주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8㎎부터 150㎎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스테로이드 주사가 원래 미용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기준 없이 의사 재량에 맡겨진 상태"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피해자는 윤곽주사에 스테로이드 성분이 함유돼 있는 걸 모르고 맞는다. 병원에서 성분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7월 말 '달걀주사'를 맞고 한 달에 2번 생리를 겪었다는 최모(23)씨는 "아무런 설명 없이 바로 시술대 위에 올라갔다"며 "스테로이드가 위험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알려줬다면 (주사를)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형외과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 김모(28) 간호조무사는 "설령 환자가 먼저 (성분을) 물어와도, '원장이 주사액을 섞기 때문에 모른다'거나 '스테로이드 성분은 없다'고 거짓말하는 경우도 많다"며 "어차피 주사를 맞고 나면 아무도 알 수 없고 차트상에도 '윤곽주사 40㏄' 식으로 표기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곽주사 부작용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지만, 국가에 정식으로 구제신청한 경우는 드물다. 작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성형 부작용 상담 민원 4592건 중 윤곽주사와 관련한 건 0.4%인 21건에 불과했다. 민병두 이사는 이에 대해 "피해 사례는 많지만 윤곽주사는 회당 5만~10만원 정도의 가격 때문에 본격적인 성형수술이라는 인식이 약하고, 병원도 '공짜 필러로 팬 살을 메워주겠다'고 유도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임동준 가톨릭대 내분비내과 교수는 "다량의 스테로이드가 체내에 주입되면 생리 불순 외에도 소화기 궤양이 발생하고 혈당이 급증하는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