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별아, 권지예

당신이 알던 그 여자가 아니다. "문란한 여자요? 실은 보수적이고 남자 같은 여자였다는 기록이 많아요."

장편 '미실'로 유명한 소설가 김별아(47)씨가 한국 최초의 여성 근대소설가 탄실 김명순의 일대기를 추적한 소설 '탄실'을 펴냈다. 21세에 등단해 여류 작가로는 처음으로 소설집('생명의 과실'·1925)을 출간한 탄실은 기생의 딸로 태어나 '자유연애주의자'로 알려져 온 대표적 신여성. 외국어에 능통했고, 문예지 '창조'의 첫 여성 동인이었다. 소설 23편과 시 107편, 평론·희곡 등을 써내며 문재(文才)를 뽐냈지만, 성폭행 사건과 세 번의 연애를 통과하며 방종한 여자로 취급됐다. 김기진·김동인·방정환 등 남성 문인들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탕녀'라고 손가락질해댔다. 김씨는 3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탄실은 출신 성분과 사생활을 빌미로 난도질당하며 오해와 싸워야 했던 비운의 여성"이라면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누락된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상상력보다는 연구 자료에 입각해 사실 중심으로 썼다"고 말했다.

그간 박제된 이미지 속에 방치돼 있던 한국의 여류 작가를 재조명한 소설이 잇따라 출간됐다. 모두 여성 작가의 손에서 재탄생한 작품이다. '되바라진 신여성'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절망적 예술혼을 재발굴한 김씨의 '탄실'과 더불어 소설가 권지예(56)씨의 전작 '붉은 비단보'(2008)의 개정판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가 지난 25일 세상에 나왔다. 소설 속 사임당은 기존 현모양처의 상징을 벗어버린 채, 옛 정인(情人)을 잊지 못해 자살 기도까지 하는 뜨거운 여인으로 그려진다.

2008년 출간 당시만 해도 권씨는 "사임당의 생이 소설의 주요 모티브"라 밝히면서도 "여주인공 항아는 상상 속에서 탄생한 전혀 다른 영혼"이라며 사임당과의 직접 연결을 피했었다. 최근에야 "당시 초고를 받아 본 출판사에서 '사임당을 그런 여성상으로 묘사했다고 밝히기엔 시기상조'라는 우려를 표해 사임당을 제목에 명시하지 않았다"고 저간의 사정을 밝혔다. 이어 "이제야 그녀의 이름을 되찾아주게 됐다. 우상이 아닌 한 인간을 호명하고 싶었다"고 했다.

여성의 얼굴이 시대에 따라 새롭게 비치면서, 아예 사임당의 이미지가 정치적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홍양희 한양대 교수는 학술지 '사학연구' 여름호에 논문 '현모양처의 상징, 신사임당: 식민지 시기 신사임당의 재현과 젠더 정치학'을 발표해 "사임당이 현모양처 담론과 조우하게 된 건 1930년대부터"라며 "모더니티 비판의 분위기와 전통에 대한 향수가 강해지면서 현모양처로 발명됐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