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의 감독을 받는 한국증권금융 감사에 조인근 전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이 선임됐다. 주식·채권의 발행과 유통을 지원하는 이 회사에서 감사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금융에 대한 전문 지식과 경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12년 전부터 메시지 담당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보좌해온 인물이다. 금융 분야 경력이라곤 전혀 없는 전형적 낙하산 인사다.
이 정부는 지난 3월엔 광물자원공사 감사에 김현장 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 4월 신용보증기금 감사에 김기석 전 새누리당 국민통합위원회 기획본부장, 5월 한국전력 감사에 이성한 전 경찰청장을 선임하는 등 낙하산 인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인천공항공사에선 최근 2년 사이 정치인과 관료 출신의 두 낙하산 인사가 사장으로 왔다가 1년도 안 돼 선거에 출마한다며 물러나 경영 공백이 생기기도 했다. 올해 초 인천공항에서 수화물 대란이 벌어진 것은 경영은 안중에도 없는 이런 낙하산 사장들 때문이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과거에도 낙하산 인사는 있었지만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 철회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넉 달 전까지만 해도 청와대는 KB국민은행 감사에 전 청와대 비서관을 보내려다 여론의 비판이 일자 철회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바깥 여론 동향을 아예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주 산업은행 자회사인 대우건설이 사장 선임을 강행한 것만 해도 그렇다. 산은은 정상적으로 진행되던 대우건설 사장 선임 절차를 느닷없이 중단시키더니, 다시 공모를 진행해 뒤늦게 후보가 된 사람을 밀어붙여 결국 사장으로 만들었다. 여권 실세가 민다는 사람이었다. 많은 비판이 쏟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제 그런 비판은 안중에도 없다는 행태다.
요즘 공기업 주변과 금융계에선 9월부터 올해 연말까지 임기가 만료될 공공기관 67곳의 기관장 자리를 놓고 낙하산 인사를 둘러싼 루머가 이미 나돌고 있다. "A은행엔 실세와 가까운 누가 행장으로 온다" "B공기업엔 총선에서 낙선한 누가 관심 있다"는 식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여야 대표 회동 때 "낙하산 인사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실을 모르거나 아예 눈감고 보지 않으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