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의 부위 중 1960년대까지 한국에선 식용으로 쓰지 않고 썩혀서 비료나 만들던 부위는? 상어 지느러미다. 중국 3대 진미라는 최고급 요리 재료를 기껏 비료 원료로 썼다니…. 샥스핀 1㎏에 27만원쯤 하는 오늘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놀랍다. 그때 그 지느러미는 질기고 딱딱한 생선 찌꺼기일 뿐이었다. 이 천덕꾸러기 부위가 이 땅에서 '신분 상승'을 하게 된 건 1960년대 중반쯤부터다. 홍콩, 대만 등에서 비싼 값에 팔린다는 걸 알아차리고 수출을 시작했다. 외화 획득을 위해 개구리에서 오줌까지 수출하던 시절이니 이보다 반가운 일도 없었다. 신문은 "지금까지 상어 지느러미를 대단치 않게 여겨 비료로 쓰거나 겨우 기름을 짜는 정도였지만 이제 당당히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썼다. 기사 제목은 '이것도 팔리고 있다'.
부산, 목포 등지에서 잡힌 국내산 상어 지느러미는 해외에서의 평가도 좋았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주문이 늘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1971년엔 원양어업을 통해 잡은 물량까지 팔아 한 해 100t이나 수출했다. 정부는 1972년부터 상어 지느러미를 '역점 수출품'으로 지정하고 관련 업체에 자금 지원까지 했다. 같은 해 4월엔 상어 지느러미의 국내 소비를 전면 금지했다. "우리끼리 먹는 건 꾹 참고, 일단 외화를 벌자"는 뜻이었다.
상어는 원양어선의 참치잡이 그물에 잘 걸려들었다. 선원들은 상어의 지느러미를 말린 뒤 외국 기지에 기항할 때마다 팔아 짭짤한 용돈 벌이를 했다. 수산 회사들은 고생하는 선원들 처지를 고려해 일종의 보너스처럼 상어 지느러미를 현지에서 팔아 쓰게 했다. 황금이 고이는 곳에 늘 다툼이 끼어든다. 1979년 4월엔 중남미 니카라과 부근에서 조업하던 한국 참치잡이 어선 선원들이 상어 지느러미 판매금 분배 문제로 선장과 충돌한 끝에 선장을 감금하는 선상 반란까지 일으키기도 했다(조선일보 1979년 7월 22일자).
1970년대 들어 샥스핀 맛은 한국인들 혀와도 친해지기 시작했다. 1972년 9월 남북적십자 회담을 위해 평양을 찾은 우리 대표단에게 북측이 상어 지느러미 요리가 포함된 만찬을 냈다. 그러자 우리도 질 수 없다는 듯 며칠 뒤 북한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했을 땐 상어 지느러미는 물론 프랑스에서 공수한 타조 간, 대만에서 들여온 제비집 요리 등으로 초호화판 메뉴를 차려냈다. '외화를 들여서까지 북측 인사들을 호화판으로 접대한 것은 한심스러운 일'이라는 시민들 비판이 나왔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식탁에 오른 먹거리의 운명 중 상어 지느러미만큼 반전(反轉)을 겪은 것도 드물다. 한때의 음식물 쓰레기는 최고급 요리 재료가 됐다. 그래도 여전히 상어 지느러미는 쉬운 음식은 아니다. 1인분 15만원까지 한다니 호화 사치 요리다. 게다가 한 해 7300만 마리의 상어를 잡아 지느러미만 떼어내고 버림으로써 상어에게 극도의 고통을 안기고 멸종 위기까지 부른다며 국제사회에선 '샥스핀 먹지 말기' 운동까지 펼친다. 우리나라에도 이 운동이 상륙했고, 국내 항공사들도 2013년부터 샥스핀 운송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마 전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신임 지도부의 청와대 오찬에 샥스핀이 올랐다. 호화 사치와 생태계 파괴라는 두 가지 비판에도 꿈쩍 않은 무신경이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