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 운전, 졸음 운전 등으로 생기는 교통사고 말고도 무신경한 습관이 불러온 사고들도 꽤 많다. 나 뿐만 아니라 내 가족과 타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운전 습관.
지금 다시 돌아보고, 바로 잡을 때다.
안전 위협하는 문자族
지난 6월 30일 경기 수원시의 한 아파트 앞 삼거리에서 시속 40㎞로 달리던 승용차가 자전거를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던 고등학생(17)을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를 당한 고등학생은 4m가량 튕겨나가 쓰러진 충격으로 오른팔이 골절되는 등 전치 5주의 상처를 입었다.
지난 2014년 6월에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기 위해 우회전하던 SUV 차량이 길을 건너던 50대 여성을 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차량 속도가 시속 20㎞ 정도로 아주 빠르게 달린 편은 아닌데도 피해 여성은 사망했다. 당황한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는 바람에 차량이 쓰러진 피해자를 밟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두사고 모두 사고 원인은 '휴대폰 메시지'였다. 경찰 조사 결과 승용차 운전자는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피해자를 보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해상 교통기후환경연구소 이수일 박사는 "운전 중 문자를 보낼 때면 운전자의 시선이 핸들 아래에 있는 휴대폰을 향하기 때문에 그나마 앞이라도 볼 수 있는 운전 중 통화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말했다.
운전 중 휴대폰으로 문자나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를 읽고 쓰는 '텍스팅족(texting族)'이 교통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텍스팅'이란 휴대전화로 문자나 SNS 글을 주고받는 것을 말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하다 발생한 사고는 2013년 222건에서 2014년 259건, 지난해 282건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사상자 수도 2013년 363명에서 지난해 487명으로 2년 만에 34% 늘었다. 경찰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대중화한 이후 운전 중 통화보다는 운전 중 문자나 카톡 이용으로 인한 사고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운전 중 문자 보내기는 만취 상태에서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교통안전공단 관계자는 "실험에 참여한 운전자의 반응 속도가 면허 정지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8% 상태의 음주 운전자와 유사했다"며 "운전 중 문자를 보내면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을 가능성이 일반 운전에 비해 4배 이상 높아진다"고 했다. ▷기사 더보기
체증 부르는 막무가내 말다툼
지난달 11일 오전 7시 30분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범천동의 범내골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던 SUV 차량이 직진하던 다른 SUV 차량과 부딪치는 사고가 났다. 외관상 긁힌 자국(스크래치)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사고였지만, 2명의 운전자는 차를 세우고 서로 상대 잘못이라며 말다툼을 벌였다. 이들은 "현장을 보존해야 보험회사 직원이 누구 잘못인지 정확히 판단할 것"이라며 20여 분간 사고 차량을 그대로 뒀다. 두 차량 때문에 출근시간대 교통 정체에 걸린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차를 갓길로 빼달라"고 요청했지만, 이들은 막무가내였다.
경미한 사고가 난 차량을 장시간 도로 위에 방치해 교통 흐름을 끊고 다른 운전자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사고 차량 운전자들은 "쌍방의 과실 여부를 정확히 가리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해명한다. 그러나 이는 교통사고 처리에 대한 잘못된 교통 상식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심재익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위원은 "사고가 나면 당황스럽더라도 가까운 지인(知人)보다는 경찰과 보험사 등 사고 처리 전문가에게 곧장 전화하는 것이 사고 처리를 앞당기고 통행에도 불편을 주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고 차량 방치는 더 큰 2차 사고로 이어지곤 한다. 지난 9일 오전 4시 30분쯤 경기 평택시 평택-제천고속도로 청북 나들목에서 제천 방향으로 1㎞ 떨어진 곳에서 11.5t 화물차가 정지해있던 덤프트럭 후미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화물차 운전자(54)가 숨지고 덤프트럭 운전자(31)가 다쳤다. 경찰 조사 결과, 덤프트럭 운전자는 차선 변경을 시도하던 승용차와 접촉 사고를 낸 뒤 사고 처리를 위해 차를 도로 위에 그대로 세워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청에 따르면 사고를 당해 멈춰 있는 차량을 들이받아 발생하는 2차 사고는 지난 2011년 446건에서 지난해 585건으로 4년 만에 31% 늘었다. ▷기사 더보기
[경미한 사고땐 사고지점 표시하고 사진 찍으면 충분… 車는 도로 옆으로 빼야]
유명무실한 속도제한
23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뒤 이면도로. 길이 200m가량 도로 곳곳에 '시속 30㎞ 제한 구역'을 알리는 표지판이 설치돼 있었지만, 차량들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쌩쌩 달리고 있었다. 회사원 신모(44)씨가 폭 4m쯤 되는 이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널 때 중형 승용차 한 대가 신씨 바로 앞에서 '끽' 소리를 내며 급정거했다. 놀란 신씨가 승용차 운전자에게 다가가 "시속 30㎞ 제한 구역이라는 것이 안 보이느냐"고 따지자 이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본지가 이날 경찰청 소속 교통경찰관과 함께 스피드건을 갖고 이 도로를 지나는 차량 100대의 속도를 측정한 결과, 62대가 제한 속도(시속 30㎞)를 넘겼다. 제한 속도의 2배인 60㎞ 가깝게 달리는 차량들도 있었다.
생활도로를 비롯한 이면도로는 대부분 폭이 9m 미만으로 좁고, 인도와 차도가 명확히 구분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차량과 보행자가 뒤섞여 다녀 사고 위험이 크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교통사고로 사망한 보행자 4621명 가운데 55.9%에 달하는 2586명이 이면도로에서 사고를 당했다.
이면도로 사고가 빈발하자 경찰은 2010년부터 생활도로구역을 도입했다. 속도를 시속 30㎞ 이하로 제한해 사고를 막자는 취지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전국 277곳이 생활도로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생활도로구역에서 과속을 할 경우 일반 도로와 같이 3만~7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그러나 홍보와 교육 부족으로 생활도로구역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운전자가 많다. ▷기사 더보기
보행자와 차량이 섞여 다니는 상가 밀집지역·주택가 이면도로에 설치되는 시속 30㎞ 제한 구역. 사고 위험을 낮추기 위해 과속 방지턱과 횡단보도 등 차량 속도를 줄이는 시설들이 설치된다.
나흘이면 딸 수 있는 운전면허
지난 22일 오후 서울 노원구 도봉운전면허시험장의 한 강의실. 운전면허를 따러 온 수험생 30여명이 한 시간짜리 교통안전 교육용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도로 예절과 사고 대처법 같은 운전 상식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험생은 책상 위에 운전면허 필기시험 책자를 올려놓고 필기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다. 동영상 내용을 설명해줄 강사도 강의실에 없었다. 동영상이 끝나기 전 시험장 직원이 강의실에 들어와 안전 교육을 받았다는 인증서를 나눠주자 수험생들이 모두 자리를 떴다.
본지 기자는 23일 오전 면허 취득을 위한 다음 단계인 장내 기능 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30분짜리 사설 운전 강습을 들었다. 강사는 "감점 15점인 '급정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여기서 감점되면 불합격이 나올 가능성이 크니 무조건 '돌발' 소리가 들리면 2초 내에 브레이크를 '콱' 밟으라"고 했다. 기자가 "차량이 갑자기 서면 뒤차와 충돌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묻자 강사는 "30분 교육에 그런 거 다 알려 드릴 수 없고, 실제 시험과 무관하니 그냥 연습하시라"고 답했다.
기자는 24일 오전 장내 기능 시험에서 차체(車體)가 들썩일 정도로 일부러 브레이크를 세게 밟아 급정거해봤다. 실제 도로라면 뒤차와 충분히 충돌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2초 내에 급정지하고 비상등을 켰기 때문에 감점되지 않고 시험에 통과했다.
이런 식으로 운전면허가 없는 본지 기자가 '임시 면허'를 따는 데는 불과 사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임시 면허 취득 후 6시간의 도로 주행 연수를 받으면 도로 주행 시험을 보고 정식 면허증을 받을 수 있다. 한 운전면허 학원 관계자는 "안전 교육 이수, 필기시험, 장내 기능 시험, 도로 주행까지 속전속결로 처리하면 운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나흘이면 정식 면허를 딸 수 있다"고 했다.
운전대를 잡는 교육 시간이 35시간에서 8시간으로 대폭 줄면서 도로 주행에 미숙한 운전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장내 기능 시험을 통과해 임시 면허를 받은 운전자들이 일으키는 사고도 증가했다. ▷기사 더보기
[핀란드, 임시면허 받고 2년간 법규 준수해야 정식면허 취득 가능]
불법 주정차 불감증
지난 26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송초등학교 앞 골목길. 폭 6~7m짜리 도로가 150m가량 이이지는 이 길 양편에 차량 40여대가 빼곡히 주차돼 있었다. 모두 주정차 금지구역을 위반한 불법 주차였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불법 주차된 차량 사이를 지나가는 차들을 피해 차로 위를 걸어 집으로 향했다.
세 살배기 딸과 함께 이곳을 지나던 송유진(여·31)씨는 도로에 승합차가 나타나자 급히 딸의 어깨를 감싸서 도로 바깥쪽으로 밀어냈다. 송씨는 "키 작은 아이가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 사이를 오가면 운전자들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사고가 날까 봐 항상 불안하다"고 말했다. 본지가 이날 이 학교 인근 골목길 30곳을 다녀봤더니 25곳(83%)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이 있었다.
서울 도심 도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도로. 10분당 주차요금이 1000원인 공영주차장이 있는데도, 차량 40여대가 불법 주차를 하고 있었다. 공영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도로에 차를 세운 운전자에게 다가가 공영주차장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당황한 표정으로 "자주 이곳에 차를 세우고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한 번도 적발된 적은 없다"고 답하더니 황급히 사라졌다. 실제로 본지가 3시간여 동안 이 도로를 취재하는 동안 주차 단속 요원은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불법 주정차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심각한 교통 체증도 유발한다. 지난 27일 오후 6시쯤 서울 용산구 반포대교 북단 인근의 한 아파트 단지 진입로. 왕복 2차로 도로 양편을 가득 메운 불법 주차 차량 때문에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공간밖에 없을 정도로 차로가 좁아졌다. 주민 이모(29)씨는 "4년 동안 살면서 단속 나온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며 "어떤 날에는 푸드 트럭까지 도로 한쪽을 차지하고 장사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날 200m 남짓한 이 진입로를 차로 통과하는 데만 5분이 걸렸다. 차량이 이동하는 속도가 걷는 것보다 더 느렸다.
이 같은 불법 주정차는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최근 불법 주정차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분석한 결과 서울시에서만 연간 4조8970 억원의 사회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기사 더보기
[韓, 불법주정차 벌금 3만2000원… 佛 최고 189만원]
알면서도 어기는 안전수칙
지난 6월 8일 오전 부산의 남항대교(大橋) 위를 달리던 승용차가 좌우로 미끄러지듯 운행하다 길가에 설치된 안전방호벽을 들이받고 뒤집히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운전자 김모(30)씨가 전치 4주의 부상을 당했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해 보니 도로 위에는 물이나 기름처럼 사고를 유발할 만한 물질은 전혀 없었다. 김씨가 과속을 한 것도 아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사고 원인은 내비게이션이었다. 김씨가 운전 중 내비게이션을 조작하다가 사고를 낸 것이다.
본지가 지난 28~29일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는 운전자 14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77.6%가 운전 중에 내비게이션을 조작해 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조작을 해 본 운전자 가운데 32.5%는 실제 사고를 냈거나 신호 위반을 하는 등 위험한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전문가들은 운전 중 내비게이션 조작이 졸음운전이나 음주 운전만큼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한국교통연구원 설재훈 박사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는 시간이 깜빡 조는 것보다 긴 데다, 제대로 입력하려면 운전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에 사고 위험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런 위험 때문에 국토교통부는 2012년 8월부터 출시된 신차(新車)에 내장된 내비게이션에 대해 운전 중 조작이 불가능하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거치식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의 경우 대부분 이런 기능이 없다. 국가기술표준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운전 중 조작을 차단하는 기능이 있는 내비게이션은 전체의 12.5%에 불과했다. 내비게이션 10대 중 9대는 여전히 운전 중에도 조작이 가능한 것이다.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