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와 탤런트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약했던 이혜영(45)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패셔니스타였다. 그녀가 입은 옷, 액세서리, 헤어스타일은 '이혜영 스타일'로 히트 쳤고, 톡톡 튀는 말솜씨로 예능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던 이상민과의 결혼식은 이혜영의 스타일링 감각을 한눈에 보여줬다. 하지만 이혼과 재혼, 아버지의 죽음, 12년을 함께한 반려견 '도로시'마저 떠난 일 때문에 힘든 나날이 이어졌다. 그 순간 붓을 들었다. 프리다 칼로처럼 그림으로 아픔을 치유하고 싶었다. 연예인의 호사스러운 취미라는 삐딱한 시선도 있지만 이혜영은 사뭇 진지했다. 지난해에는 그녀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그림을 보고 국내 정상급 갤러리 가나아트에서 전시를 제안했다. 지난해 10월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이 나에게 준 선물'이란 제목의 첫 전시를 연 그녀는 오는 9월 2~30일 통의동 진화랑에서 두 번째 개인전 '뮤즈 오브 더 윈드'를 연다. 무료 관람. "그림에 미쳤다"는 이혜영은 "그토록 좋아하던 예쁜 옷, 신발, 가방도 눈에 안 들어온다"며 싱긋 웃었다.

모태 금손? 어릴적 미술상 휩쓸어

―팬들이 이혜영을 '금손 작가'라 부르더라. 어릴 때 그림을 배웠나?

"좋아하고 잘 그렸다. 미술 학원 한번 안 다녔는데 각종 미술 대회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 집에 자투리 천이 많아 마론 인형 옷도 내가 만들어 입혔다. 종이 인형 옷을 두꺼운 종이에 몇 장씩 그려 이불 밑에다 쫙 펴고 잤다.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얘는 미술을 시켜야 한다'고 권할 정도였는데 엄마가 딱 잘라 거절하셨다. '이 정도 그리는 사람이 수억만 명'이라며."

―왜 그리 반대하셨을까?

"미술하면 가난해진다는 편견이 강하셨다. 악기를 배워두면 학원이라도 운영할 수 있다며 언니는 피아노, 나는 플루트와 비올라를 배우게 했다."

―마흔 넘어 그림 그리는 딸 보고 지금은 뭐라고 하시나?

"미안해하시지. '그때 가르쳐줬으면 멀리 돌아오지 않고 더 잘될 수 있었을 텐데' 하시면서. 엄마가 원래 교육열이 높다. 인천 외진 동네에 살았는데 오빠를 연대 의대에 보냈다. 인천 수봉산 밑에 살았는데 도심에서 작은 집 살 돈으로 달동네에 큰 집 짓고 사는 게 낫다며 2층 양옥집을 지었던 여걸이다."

―붓을 다시 잡은 계기는?

"재혼하고 굉장히 바빴다. 아버지가 (위암으로) 돌아가시기 일보 직전이었다. 언니·오빠가 미국에 있어서 내가 부모님을 돌봐드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사춘기 딸도 생겼다(재혼한 남편에게 고1 딸이 있다). 도로시까지 아파서 너무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애가 '친구들이 엄마 왜 요즘 TV에 안 나오냐'고 물었다고 하더라. 딸애에게 나도 뭔가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방문을 열면 딱 보이는 거실에서 항상 그림을 그렸다. 8개월 후에는 온 거실이 내가 그린 그림으로 채워져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그림을 따로 배운 적 있나?

"없다. 미술관도 결혼하고 나서 처음 가봤다. 그냥 어릴 적부터 계속 뭔가를 그리고 만들고 디자인했다. 인형 옷 만들고, 의류 브랜드 '미싱 도로시' 하며 디자인도 직접 하고. 신랑이 이 정도 그렸으면 남들 데생 연습하는 것만큼 그렸을 거라며 인정한다."

명화 ‘비너스의 탄생’을 자신의 반려견 ‘부부리’를 주인공으로 패러디한 그림.<100X160㎝, 캔버스에 유화>

―작품 소재는?

"나 자신, 내가 바라보는 것, 내가 사랑하는 것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림일기였다. 프리다 칼로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림 그리는 행위가 내겐 치유였다."

―첫 전시 주제가 '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그 전시 주제가 2015년 1월 그린 자화상의 제목이다. 자화상을 보면 손에 붓을 꼭 쥔 여자의 찢어진 가슴에서 나비가 날아오른다. 그림 속 얼굴이 나다. 저 그림 그리고 내 마음이 치유되면서 그렇게 추앙했던 프리다 칼로 생각이 더 이상 안 나더라."

―전시 반응은 어땠나?

"5000명 이상 와서 깜짝 놀랐다.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오려면 300m 가파른 시멘트 오르막길을 걸어야 한다. 전시를 보겠다고 여자들이 옷을 쫙 빼입고 하이힐을 신고 걸어왔더라. 감사했다."

―두 번째 전시다.

"부자도 아니고 그림을 팔겠다는 마음도 아니고. 그냥 나 같은 사람도 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보통 사람들이 미술을 좀 더 쉽게 대할 수 있을 것 같고. 이번엔 설치미술에도 도전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수 20만6000명

―가수의 길은 접은 건가?

"가수는 안 맞는 것 같다. 그림이 좋다. 열심히 그리다 보니 좋은 일이 생기더라. 화장품 브랜드 '키엘'에서 컬레버레이션 요청이 들어오고, '빈폴 골프'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제안도 들어왔다."

―조영남 대작 사건으로 연예인이 화가로 나서는 데에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상관없다. 내가 아니면 되는 거지. 조수는 필요하겠더라. 작품 옮기다 허리 삐끗하면 한동안 그림 못 그리고, 물감 바꿀 때마다 붓도 빨아야 하고(웃음). 하지만 그런 것마저 즐기며 혼자 해내고 싶다."

―'닭대가리 엄마'라는 작품은 뭔가?

"결혼하면서 학부모 세계로 들어갔다. 근데 학창 시절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아이한테 공부만 하라고는 못 하겠더라. 주야장천 그림 그리는 모습만 보여줬다. 그랬더니 아이가 요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런 게 교육인가 싶다."

―한동안 뜸하다 인스타 패셔니스타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소통하는 재미를 위해서다. 패션 사진을 주로 올리는데, 팔로어가 20만6000명이다. 즐겁다."

―패셔니스타가 되고픈 사람들에게.

"많이 입어봐야 한다. 내가 초등 4학년일 때 대학생이던 언니가 엄청 멋쟁이였다. 그때 이미 '논노' '위드' 등 일본 패션 잡지를 봤다. 나도 옷을 많이 샀다. 스트리트 패션부터 명품까지 시도 안 해본 게 없다. 이제는 그냥 어떻게 입어야 할지 보인다. 쇼핑 시간도 짧다. 30분이면 내 옷에 신랑 옷까지 다 사서 나온다."

―이혜영이 인정하는 패셔니스타는?

"국내는 (김)민희, 해외는 케이트 모스."

―그림은 언제까지 그릴 건가?

"60세엔 어느 정도 반열에 선 화가가 되고 싶다는 귀여운 목표가 있다. 좋아하는 작가가 프랑스의 니키 드 생팔이다. 예전에 보그, 바자 모델이었는데 살면서 아픔이 많았다. 파리 거리에서 이 여자 작품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로 프랑스 국민이 좋아하는 여류 작가다. 그런 작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