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서울 영등포구 대림역 12번 출구. 독일산 고급 승용차들이 연이어 상가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차에서 내린 젊은이들은 중국 호텔 출신의 주방장이 요리하는 고급 중식당으로 올라갔다. 식당 종업원은 "주말 저녁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중국인 단체 예약 손님을 받느라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대림동은 일용직 노동이나 식당 일 등을 하러 한국에 온 조선족과 중국인이 수십 년간 터를 잡고 살아온 동네다. 서울의 대표적 낙후(落後) 지역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곳은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에겐 명동이나 강남 못지않은 번화가로 탈바꿈했다.

특히 대림2동의 대림역 8번 출구와 12번 출구 사이의 약 200m 거리는 평일 밤이나 주말이면 중국인·조선족들로 가득 찬다. 이들은 중국 고유의 입맛을 살린 중식당과 중국 대중가요 목록이 가득 찬 노래방 등 유흥 시설로 몰려든다. 대림역 앞 중앙시장에서 만난 택배 직원 김모(45)씨는 "주말이면 결혼식이나 생일잔치를 마친 중국인들이 수십 명씩 무리 지어 주변 식당에서 3차, 4차까지 먹고 마신다"고 했다.

대림역 12번 출구 인근에 중국 식당과 술집, 중국 가요를 부를 수 있는 노래방이 밀집해 있는 모습. 최근 이곳 일대는 중국인과 조선족 중산층 인구가 늘면서 상권이 발달해 강남 못지않은 번화가로 변모하고 있다.

이 일대 상인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대림역 주변에서 양다리구이집을 운영하는 조선족 김만영(55)씨는 최근 국산 중형차와 30평대 아파트 한 채를 샀다. 중국 선양에서 한국에 맨손으로 건너온 그는 일용직 노동을 하며 돈을 모았고, 대림동에 5평 남짓한 양꼬치 가게를 차렸다. 지금은 서울 전역에 양다리구이집 체인점 11곳을 내며 사업을 키웠다.

조선족 김순희(54)씨는 화장품 사업에 실패하고 대림역 근처에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마라탕(麻辣燙·손님이 재료를 선택해 만드는 매운 요리), 궈바오러우(鍋包肉·북경식 찹쌀 탕수육) 등을 파는 중식당을 열어 대박을 터뜨렸다. 지난 3년 사이 체인점 두 곳을 더 냈고,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딸들까지 불렀다고 한다. 김씨는 "요즘엔 나처럼 대림동에서 돈을 많이 벌어 중국에 있는 가족을 한국으로 부르는 상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림동의 한 부동산 업자는 "목이 좋은 대림역 일대 가게들의 월세는 지난 3년 사이 2배 이상 뛰어 이태원 수준인 700만~800만원(99㎡·30평 기준)이 됐고, 권리금도 1억~2억원까지 올랐다"고 했다.

이 지역이 뜨는 이유는 중국인, 조선족 유입 인구가 많기 때문이다. 대림동 내에서도 번화가로 통하는 대림2동 거주자(2만4461명) 중 40%(9874명)가 중화권 인구다. 2012년 이후부터 법무부가 재외 동포 중 대학 졸업자, 기업 대표, 자격증 소지자 등에게 확대 발급한 '재외 동포 비자(F-4)'도 인구 증가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 비자를 발급받은 국내 중국 동포는 2012년 11만6988명에서 2015년 24만1056명으로 급증했다. 재외 동포 비자 소지자의 가족들에겐 '방문 동거 비자(F-1)'도 발급된다. 재외 동포가 중국에 있는 가족까지 합법적으로 불러올 길이 넓어진 것이다.

한때 우범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대림동 일대는 안전하고 깨끗한 지역으로 변신하는 데도 성공했다.

작년 4월 영등포경찰서는 한국인 90명, 조선족 70명으로 구성된 최초의 한·중 통합 자율 방범대를 출범했다. 이들은 한국어와 중국어로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질서 지키기' 등을 적은 유인물을 나눠주고, 밤에는 골목을 돌아다니며 방범(防犯) 활동을 펼친다.

최근엔 '서울 속 작은 중국'인 대림동을 찾아 중국 문화를 경험하는 한국인도 늘었다. 훠궈(火鍋·중국식 샤부샤부) 맛집으로 온라인을 통해 소문이 난 한 가게엔 20여개 테이블의 절반 정도가 한국인으로 채워진다고 한다.

석 달마다 대림동으로 반 전체가 중국 체험 학습을 온다는 중국어 학원 수강생 김경아(53)씨는 "대림동 식당에서 중국 음식을 먹고 중국 물품을 파는 수퍼마켓을 구경하면서 중국어 연습을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