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미국에서 전화가 왔다. "대수야, 나 고모다" "네, 고모. 어떻게 전화하셨어요?" "한국에 살고 싶어서 내일 한국으로 간다."
아니 어떻게 60년을 미국서 일하고 산 사람이 이제 와서 한국에 살겠단 말인가? 알고 보니 84세 된 고모가 갑자기 고향 생각이 나고 인생의 황혼을 모국에서 지내겠다는 것이었다. 말이 쉽지 일은 쉽지가 않다. 일단 고모는 움직일 수 없고 걷지를 못한다. 그리고 너무 늙어서 꼭 누가 옆에서 간호를 해야 한다.
그래도 한국에 살고 싶었던 고모는 할 수 없이 운전수를 한 사람 고용해서 붙이고, 살고 싶은 곳을 찾았다. 이미 미국에서 광고를 보고 생각해 놓았던 실버타운으로 갔다. 좋았다. 12층짜리 건물엔 시설도 완벽했다. 사우나, 헬스클럽 그리고 24시간 간호사와 의사가 대기하는 곳이었다. 음식 메뉴도 다양했고 가격도 특급이었다. 2억5000만원 보증금에 월세 180만원, 그리고 관리비. 고모는 "나는 좋다. 당장 계약하자"고 했다. 나는 "실버타운은 많으니까 다른 곳도 몇 군데 보고 계약하자"고 제안했다.
고모는 내 손을 잡고 "대수야, 나는 된장찌개, 김치찌개, 한국 음식 마음껏 먹고 싶다. 그리고 한국 친구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도서관학의 개척자로 뉴욕 컬럼비아 대학 도서관장까지 지낸 학자가 노년에 이르러 고향이 너무나도 그립다는 것이었다.
나는 고모를 우리 엄마가 계시는 요양원에 데려갔다. 엄마가 18세 처녀로 한씨 집안에 맏며느리로 입성했을 때, 고모는 16세였다. 아버지가 실종되고 3년 후 엄마가 재가한 뒤 처음 만났으니, 두 분은 64년 만에 처음 만나는 것이다. 엄마는 "아이고, 우리 아가씨, 너무나도 반갑소. 아직도 예쁘네"했고, 고모는 "아이고, 언니도 하나도 안 변했어. 뷰티풀"하며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나도 울컥했다.
고모는 실버타운 몇 군데를 더 보았지만 결정을 못 했다. 나는 충고했다. "고모, 일단 미국 돌아가셔서 고모부하고 같이 의논하고 결정하세요." 고모는 그 말씀을 듣고 미국으로 돌아가셨다. 마지막 생선구이 식사를 맛있게 하시고 웃으면서 떠났다. "아이고, 맛있다!"하시며.
이 광경을 보고 나도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이 70에 돌진하니 매일같이 노후 생각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내게는 아홉 살짜리 딸도 있지 않은가? 몸은 하나씩 하나씩 고장 나기 시작한다. 심장은 부정맥으로 허약해지고, 혈관은 하지정맥류에다 피부에는 온갖 검은 점과 작은 혹이 나타난다. 이제 언덕길을 올라가는 일도 지옥이다. 아이고, 나는 완벽한 할배로다. 밤에 눈을 감고 누우면, 온갖 과거의 후회스러운 실수들, 즐거웠던 추억들, 때로는 옛 애인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이런 것이다. 태어나고 늙어가고 병들고 죽는다. 중국 속담이 생각난다. "한평생 돈 벌려고 몸을 쓰다가, 결국 몸 고치려고 모은 돈 다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