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구조대원들은 “수많은 벌집을 떼다 보니 이젠 벌들을 파리채나 배드민턴채로 때려잡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연립주택 벽에 붙은 벌집에 살충제를 뿌리는 119 대원(왼쪽). 벌집은 크기에 따라 배구공만 한 것도 있다(오른쪽).

지난 24일 낮 12시쯤 서울 불광동 연립주택가. 폭 3m의 구불구불하고 경사진 이면도로를 119구조대 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렸다. 한 교차로에서 차가 멈추더니 구조대원 3명이 달려 나갔다. 3층짜리 연립주택 앞에 119 신고자인 할머니가 아기를 안고 서 있었다. 할머니가 가리킨 3층 발코니 벽에는 손바닥만 한 원뿔 모양의 벌집이 보였다. 말벌의 일종인 몸길이 2㎝ 정도의 쌍살벌 100여 마리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할머니는 "마당에 빨래를 널려는데 벌이 자꾸 날아와 아이가 무서워한다"며 "빨리 좀 없애달라"고 했다.

서울 은평소방서 김진우(31) 소방사가 검은 조끼를 입고 빨간 헬멧을 쓴 채 접이식 사다리에 올랐다. 오른손에는 '원격말벌퇴치기'라고 불리는 최대 길이 3m의 접이식 막대가 들려 있었다. 왼손에는 '말벌 전용 스프레이'라고 쓰여 있는 에어로졸 통이 있었다. 막대와 에어로졸은 호스로 연결돼 있었다. 에어로졸 분사 버튼을 누르자 벌집에 대고 있던 막대 끝에서 살충제가 나와 벌집을 하얗게 뒤덮었다. 10초도 안 돼 벌집의 벌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사다리 옆에 서 있던 박종열(36) 소방교가 비틀비틀 날아오는 벌을 파리채로 쳐냈다. 전깃줄을 들어 올릴 때 쓰는 절연봉으로 벌집을 툭 치자 텅 빈 벌집이 맥없이 떨어졌다.

도시 주택과 아파트, 공원에 말벌들이 늘어나면서 벌집을 없애달라는 119 신고가 늘고 있다. 전국 소방관들이 벌집 제거를 위해 출동한 건수는 재작년 11만7534건에서 작년 12만8444건으로 9% 정도 늘었다. 같은 기간 서울에서만 출동 건수는 6810건에서 9195건으로 35% 증가했다. 벌집 민원이 산간·농지보다 도시에서 크게 증가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여왕벌들이 겨울에 따뜻한 도시를 겨울잠 장소로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은평구는 2012년부터 작년까지 4년 연속 서울 시내 벌집 제거 출동 건수로 1위다. 올해도 7월까지 171건으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박종철 은평소방서 구조대장은 "주변이 북한산·인왕산·망월산으로 둘러쳐져 있고 동네 안에도 진관·불광근린공원 등 큰 공원이 많아 벌들이 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벌집 신고가 많이 들어오는데 작년 7~9월 은평소방서에 들어온 전체 119 구조신고 790건 중 59%인 470건이 벌집 신고였다.

말벌집 제거는 대부분 살충제 스프레이로 해결한다. 박노웅(39) 소방교는 "말벌집은 축구공·농구공·항아리 모양 등 그 크기와 생김새가 다양하지만, 어떤 모습이든지 벌들이 드나드는 구멍은 한 번에 찾을 수 있다"며 "양복 단추 정도 크기 벌집 구멍에 스프레이를 분사하면 벙커에 독가스를 살포하는 것처럼 일망타진된다"고 말했다. 벌집이 높은 나뭇가지에 달려 있어 사람이 올라가는 게 어려우면, 소방차를 출동시켜 물대포로 벌집을 박살 내기도 한다. 예전 일부 소방서에선 라이터 불에 살충제 스프레이를 뿌려 화염방사기처럼 벌집을 태우기도 했으나, 목조 지붕 등에 불이 옮겨붙는 사고가 발생한 후로는 그런 방법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소방관들은 "말벌 중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건 땅벌"이라고 했다. 땅벌은 야산이나 화단의 흙 속에 집을 짓고 사는데, 주로 추석 전후 벌초 시즌에 신고가 많이 들어온다. 이만수 소방사(30)는 "땅벌은 굉장히 공격적인 데다 크기가 파리보다 조금 더 큰 정도라, 보호복을 입어도 소매와 장갑 사이 틈이나 바지 밑단으로 기어들어 온다"며 "땅벌 때문에 청테이프로 팔목과 발목 부분을 칭칭 감는다"고 말했다. 장수말벌은 크기가 엄지손가락만 하다. 소방관들은 장수말벌이 보호복 얼굴의 망사천에 부딪칠 때는 "새가 와서 박는 느낌"이라고 했다.

구조대원 대부분은 벌집 제거 중에 벌에 쏘인 '아픈 경험'이 있었다. 박노웅 소방교는 "구조대 생활 10년 동안 30방은 쏘인 것 같다"고 말했다. 박종열 소방교는 "보호복 얼굴 부분의 망사천이 땀에 젖어 코밑에 붙은 적이 있는데, 그 틈에 벌에 쏘여 며칠간 퉁퉁 부은 얼굴로 출근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만수 소방사는 "보호복의 투명 고글에 말벌이 수십 마리 달라붙어 턱으로 서걱서걱 고글을 긁을 때면 공포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말했다.

살충제를 쓰지 않고 벌집을 떼어달라는 요청도 종종 있다. 벌집으로 벌술을 담가 먹으려는 사람들이다. 이만수 소방사는 "벌을 확실히 죽이지 않으면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요구는 정중히 거절한다"고 말했다.

말벌 생태를 전공한 최문보 경북대 교수는 "매년 11월쯤 수벌과 짝짓기한 여왕벌이 겨울에 집 안으로 들어와 베란다에 쌓인 짐 상자 틈새에서 겨울잠을 자는 경우가 많다"며 "이 여왕벌이 초봄부터 수백~수천 마리의 일벌을 생산해 한여름 도심에 커다란 벌집이 완성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