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의 대규모 국채 매입 프로그램이 위기에 직면했다. 일본 대형 은행들이 보유한 국채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Bloomberg)는 일본 3대 은행이 보유한 국채가 거의 바닥났고, 이에 대규모 국채 매입을 선언했던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17일(현지시각) 보도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취임 후 2013년 4월부터 이(異)차원 완화(양적·질적 완화)를 단행했다. 이는 일본 국채를 비롯한 다양한 자산을 대규모로 매입해 물가상승률을 올리는 것이 목표인 정책이다. 정책 초반 연간 국채 매입 규모는 60조~70조엔이었고, 2014년 10월 연간 80조엔으로 확대됐다.
유초은행(Japan Post Bank Co.)과 소위 일본 3대 은행이 보유한 국채는 지난 6월 114조엔(약 1조1000억달러)다. 이는 BOJ가 디플레이션 극복을 위해 대규모 채권 매입을 시작하기 전인 2013년 3월 대비 절반 가까이 줄어든 규모다.
BOJ 외에 일본에서 가장 큰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유초은행은 2015년 공모(IPO) 이후 수익성을 늘리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했다. 미쓰비시 은행과 스미모토, 미즈호 은행도 금리가 상승할 경우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국채 보유액을 줄였다.
블룸버그는 일본 3대 은행인 미쓰비시 UFJ 금융그룹, 미스이 스미토모 금융그룹, 그리고 미즈호 금융그룹이 BOJ에 국채를 더 팔아 보유 국채가 지금보다 더 줄어들면, 남는 국채 보유량은 담보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수준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 최대 은행인 미쓰비시 은행은 담보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국채를 15조엔 이상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미쓰비시 은행의 국채 보유액은 26조8000억엔에 그쳤다. 미즈호 은행은 10조5000억엔 규모의 국채를 보유하고 있다.
오사키 스이치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 도쿄 지사 수석 채권 투자전략가는 “BOJ가 연간 80조엔씩 국채 보유량을 늘리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곳은 시중 은행이다”며 “하지만 시중 은행들은 더 이상 국채를 줄일 수 있는 여지가 부족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구로다 총재는 일본의 양적완화는 한계에 부딪힌 것이 아니고, 추가적인 정책 대안도 남아있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구로다 총재가 자발적인 국채 매도자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도 BOJ에게 경제를 살릴만한 카드가 남아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BOJ가 이차원 완화 정책으로 이미 시중에 풀린 국채 중 3분의 1 이상을 대량 매입한 것이 시장의 유동성을 떨어뜨리고 일본 채권시장의 변동성을 높였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 증권업협회는 일본 금융 시장의 국채 거래액은 지난 5월 10조1000억엔으로 2004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야지마 야스히데 도쿄 NLI 리서치 연구소 수석 경제분석가는 “BOJ가 살 수 있는 국채 물량이 거의 바닥났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보험사, 연기금 등을 통해 국채를 높은 가격에 매입할 수는 있겠지만, BOJ 자체 재원 역시 제한적이어서 결국 국채 매입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코지 켄타로 시티그룹 분석가는 “은행들은 아직 국채 보유량을 줄일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여지를 갖고 있다”며 “지금이 바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