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취업을 준비하는 홍모(25·여)씨는 방값을 아끼기 위해 ‘셰어하우스’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셰어하우스는 한 집에 살면서 각자 방을 따로 사용하고, 주방이나 화장실 등은 함께 이용하며 월세를 나눠 내는 것을 뜻한다.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선 보편적으로 이뤄지는 주거 방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전세난이 지속하면서 월세 부담에 내몰린 젊은층이 주로 선택한다.

홍씨는 함께 지낼 동거인을 구하기 위해 한 인터넷 부동산카페의 ‘하우스메이트 구하기’ 게시판에 “서울 신촌 지역에서 함께 살 사람을 구한다”며 희망 집세와 연락처, 간단한 신상 정보 등을 적어 올렸다.

게시글을 올린 뒤 홍씨는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연락을 받았다. 불과 며칠 사이 도착한 개인 쪽지와 문자 메시지, 전화가 수십통이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연락을 해온 사람은 대부분 낯선 남성들로, “성 파트너가 되면 집세를 내지 않고 내 집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들 중 일부는 ‘일주일에 3회 관계 맺기’, ‘얼굴과 몸 사진을 보내주면 방값을 깎아주겠다’는 등 구체적인 요구를 내건 사람도 있었다.

성적 수치침까지 느낀 홍씨는 결국 게시글을 삭제하고 동거인을 구해 셰어하우스 하려고 했던 계획을 포기하고 여성 전용 고시원에서 지내기로 했다.

치솟는 전·월세값 부담을 줄이기 위해 셰어하우스를 선택하는 대학생과 취업준비생, 사회 초년생들이 늘고 있다. 동거인을 중개하는 부동산카페나 부동산 직거래 사이트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셰어하우스는 집세를 아낄 수 있지만 전혀 모르던 사람과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해야 하기 때문에 부작용도 적지 않다. 함께 사는 사람들과 크고 작은 다툼이 생길 수 있는가 하면, 성범죄에 노출될 위험도 크다. 특히 성 파트너를 구한다며 무료로 방을 제공해준다거나, 생활비까지 준다는 식으로 젊은 층을 유혹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직거래 카페나 애플리케이션 등 소셜미디어의 하우스메이트 모집 공간이 주로 성 파트너를 구하는 통로로 악용된다. 동성 하우스메이트를 구한다는 글에 이성이 연락해 ‘동거 조건’을 내걸거나, 자신의 성을 속여 하우스메이트 지원자를 불러들이는 식이다.

직장인 백모(26·여)씨는 최근 ‘셰어하우스를 할 여성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게시자의 집으로 찾아갔다. 게시글 작성자는 자신을 여성이라고 소개했고, 방 3개를 나눠 자신 외에도 여성이 2명이 셰어하우스를 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나 백씨가 찾아간 집에는 30대 남성 한 명만 살고 있었다. 방도 3개가 아닌 칸막이로 거실과 방을 구분한 원룸 형태 오피스텔이었다. 이 남성은 백씨에게 “나쁜 사람이 아니니 안심하고 때론 친구처럼, 때론 애인처럼 지낼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백씨는 곧바로 그 집에서 뛰쳐나와 가격은 더 비쌌지만 마음 편히 혼자서 지낼 수 있는 원룸을 계약했다.

네이버 카페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 등 대부분의 국내 부동산 직거래 사이트는 하우스메이트 모집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이 게시판에는 하루에도 수십개의 모집글이 올라온다. 그러나 게시글 중에는 성 파트너를 찾기 ‘낚시성 글’도 있다. 글을 보고 연락하면 구체적인 동거 조건을 제시하는데 성관계 횟수 등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스스로 성적 파트너가 돼줄 테니 하우스메이트를 하자고 연락하는 이들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 '피터팬의 좋은방 구하기' 카페의 '같이 살아요' 게시판에 여성만 이용할 수 있다는 공지사항이 올라와 있다.

낯선 이성에게 불쾌한 연락을 받는 등 이같은 문제가 지속해서 발생하면서 부동산 사이트들은 여성 전용 게시판을 운영하거나, 신고가 들어온 회원의 열람 권한을 제한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성별을 속이거나 새로운 아이디를 만들어 가입하는 방법도 있어 악용 게시글을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온라인을 통한 부동산 거래라 하더라도 셰어하우스를 하기 전에 하우스메이트가 신분이 확실한 사람인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한 셰어하우스 중개업체 관계자는 “셰어하우스 계약 전 상대방의 신분을 철저하게 확인하는 것은 필수”라며 “ 하우스메이트끼리 서로 생활 규칙을 명시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도 원치 않은 일을 방지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