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신고를 할 때 행정 착오로 호적상 주민등록번호에 성별이 뒤바뀌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민등록등본에 기재된 주민등록번호에는 정상적으로 성별을 나타내는 숫자(남성 1, 여성 2)가 정확히 기재돼있지만 구직활동 등에 제한적으로 제출하는 가족관계증명서를 성인이 되고 나서야 뗐다가 성별이 뒤바뀐 것을 알고 바로잡으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해 피해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KBS에 따르면, 인천에 사는 송모(37)씨는 오랫동안 지병을 앓다가 병세가 호전되자 최근 구직활동에 나서면서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은 후 두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가족관계증명서 상 주민등록번호가 여성을 뜻하는 2로 기재돼있었기 때문이다. 송씨는 만 19살에 정상적으로 징병검사를 받았으며, 그동안 주민등록등본을 수차례 떼왔지만 모두 1로 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송씨는 확인 결과 출생 당시 호적에 여성으로 등록된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정황상 여성 이름인 자신의 이름을 보고 출생신고 당시 읍사무소 직원이 실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송씨의 출생신고기록 문서는 보존 연한인 10년을 넘겨 이미 폐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송씨는 자신이 남성이라는 것을 입증할 서류를 떼 법원에 제출하기로 하고 10여 종의 서류를 발급받았다. 그는 주민등록등본 등 각종 증명서와 인우보증서, 병역증명서, 초중고교 생활기록부까지 직접 서류를 준비하면서 돈과 시간을 적잖이 쓴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서류를 주소지인 인천지법에 제출하자 법원은 본적지인 전남 장흥 관할 법원에 성별을 입증할 보호자와 함께 방문해 서류를 제출하라고 안내했다.

고령에 거동이 불편한 부모와 먼 길을 갈 수 없던 송씨는 결국 서류를 제출하지 못했다.

외견상 영락없는 남성인 그의 지난한 성별입증절차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송씨가 법원에 출석이 어렵다고 밝히자 법원 측은 남성을 입증할 수 있는 의학적 소명자료 제출로 대신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병원을 알아본 송씨는 수십만원에 달하는 성염색체 유전자 검사 비용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그로서는 부담스러운 금액인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호적에 기재된 사항은 진실로 추정돼 엄격한 법 절차에 의해서만 정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어려운 사람이라고 해서 별도의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 강동구에서 출생신고를 한 김모(28·여자)씨 역시 지난 3월 같은 일을 겪었다.

김씨는 이직에 쓸 목적으로 가족관계증명서를 떼고선 자신이 남성으로 등록돼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김씨 역시 송씨처럼 관할 주민센터로부터 유전자검사인 ‘성별감정서’를 제출하면 좋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김씨는 성별 오기를 바로잡는데 2~3개월이 걸린다는 주민센터의 말을 듣고 이직 기회를 놓쳤으며 유전자검사 비용과 법률적 대리인을 섭외하는 비용 등을 본인이 모두 부담해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주민센터에서 도리어 ‘왜 이제야 그걸 떼어봤느냐, 주기적으로 떼어봐라’는 말밖에 들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송씨와 김씨 모두 출생 당시 담당 공무원의 실수로 발생한 피해사례이지만 현행 호적관리체계상 행정구제를 청구하거나 비용을 보전받을 방법은 없다.

주민등록상 생년월일과 성별, 가족관계 등 오류를 정정해달라는 민원은 해마다 평균 1만여 건이 발생하고 있으며, 공무원의 실수를 뜻하는 ‘부여 착오’로 확인된 것 역시 1년에 1000건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씨와 김씨의 사례처럼 행정 당국이 실수했더라도 스스로 본인이 사실을 입증해야 하므로 별다른 구제책이 없는 실정이다.

현행 주민관리체계 상 주민등록 관련 업무는 지자체와 행정자치부에서 하고, 호적은 법무부가 관할하지만 신고는 지자체가 관할한다. 신고 시점에 오류가 나고 문서 보존연한이 넘으면 책임소재가 증발하는 셈이다.

행정자치부 한 관계자는 “주민등록 관련 실무는 지방자치단체 처리하므로 (행자부가) 일일이 현황을 파악하고 대처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