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세 원로 시인은 작심한 듯했다. "서투름을 시적 모호함으로, 무질서와 난삽함을 새로운 기술로 내세운다면 우리 시단에 독(毒)이 되지 않을까요?" 30세 젊은 시인의 반격도 만만찮았다. "각자의 영역에서 서로 다른 문학을 하고 있지만 이런 기형성에 역기능만 있는 게 아닙니다." 시 전문계간지 '시인수첩'이 최근 마련한 좌담회에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낸 원로 시인 허영자(78)씨와 신진 시인 박성준(30)·박상수(42)씨가 모여 설전을 벌였다. 사회를 맡은 문학평론가 이숭원(61) 서울여대 교수는 "우리 시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라고 좌담의 의미를 짚었다.

소통 안 되는 시, 어떻게 볼 것인가

시에 대한 정의부터 달랐다. 허씨는 "함축과 운율, 정제된 형식을 통해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시"라고 본 반면, 젊은 시인들은 "시는 불완전한 것"이라며 "시를 쓰는 데 전문성이 필요한지도 의심스럽다"고 했다.

허영자, 박상수, 박성준.

토론의 핵심은 요즘 시가 해독 불가 수준의 난해함을 띠는 것에 당위성이 있는가였다. 허씨는 "정리하지 않은 채 무잡하게 쏟아낸 것이 난해성이라는 허울을 쓰고 첨단을 자처해선 곤란하다"며 평가절하했다. "시의 난해함이 작품성의 견고한 뼈대 위에 위치한 것이라면 힘들게나마 해석이 되지만, 최근 시에선 그런 기미조차 찾기 어렵다"는 첨언이 붙었다. 한편 젊은 시인들은 "당위는 과정에 놓인 것이지 선행하는 것이 아니다" "명분보다 시작(詩作)의 의미와 자기 갱신을 위한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반박했다.

소통 안 되는 시인들, 세대 단절?

허씨는 "세대 간 단절 현상을 나날이 느끼고 있다"면서 최근 시의 전통 무시·산문화 경향을 짚었다. "독백 내지 자동 기술에 가까운 요설이 많아 읽기 자체가 어려운데, 읽기 어려운 시를 어찌 이해하며 이해 못하는 시에서 어찌 감동을 받을 수 있느냐"며 "새로운 시는 과거 세대의 시와 달라야 한다는 단순 논리가 이런 사태를 부른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젊은 시인들도 세대 차이를 인정했다. 박성준씨는 "원고지 세대와 타자기 세대의 글쓰기 태도가 다르듯, 태블릿PC 세대의 글쓰기 방식은 지금과 모든 면에서 다를 것"이라며 세대 간 이질성을 서로 이해하고 보존하자고 주장했다.

미래의 시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시가 어려워지면서 독자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데에도 입장이 갈렸다. 허씨가 "난해시가 상호 모방과 추종으로 유행한다면 독자는 더 달아날 것"이라고 공격하자, 반대 측은 "시가 난해해져 시 향유층이 축소된 게 아니라 사회가 변하면서 새로운 수용·소통 양식이 형성된 것"이라 반박했다. "소통 부재? 난해시? 문제는 어려워서가 아니라 친숙하지 않아서입니다. 접촉 빈도가 희박한 김소월의 시를 보여주면 독자들은 똑같이 어려워할 겁니다. 난해시라고 명명하는 순간 더 난해해지는 게 아닐까요?"

허씨는 "시인들의 정직한 자아 반성이 있어야 한다"면서 "아마추어 성향의 미숙한 난해시를 정리해 건강한 시단을 구축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젊은 시인들은 '다양성'을 지지했다. 박성준씨는 "다양한 세대 층위와 여러 방향성으로 시단은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하자, 박상수씨는 "여러 카테고리로 호명될 수 있는 시가 많아져 독자들이 다채로움을 느꼈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