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대학원 진학에 실패한 스물셋 미술 학도가 호주머니 탈탈 털어 유럽 배낭여행을 떠났다. 무기력한 청춘은 가이드북이 일러준 관광 코스 따라 파리 퐁피두센터에 갔지만, 한 푼이라도 아끼려 입장료 내야 하는 센터 안 미술관 관람은 포기했다. '포럼(Forum)'이라 이름 붙은 1층 중앙홀만 구경하고 돌아섰다. 이 미술 학도가 22년 뒤 퐁피두의 주인공이 됐다. 6일(현지 시각) 이곳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작가 양혜규(45)다.
"야망과는 담쌓은 비실비실한 학생이었어요. 퐁피두는 고사하고, 미술관에서 전시하리라곤 꿈도 못 꿨죠." 파스텔톤 분홍과 옥색 블라인드 166개를 이어 만든 거대한 설치 작품(높이 13m)을 보며 양혜규가 미소 지었다. 무대는 22년 전 아쉬움 뒤로하고 발길 돌렸던 그곳, 중앙홀이다. 샹들리에처럼 천장에 매달린 블라인드가 퐁피두의 심장부를 관통한다.
양혜규는 10년 넘게 열렸다 닫히며 투명과 불투명을 넘나드는 블라인드를 통해 인간의 닫힌 관념을 읊조렸다. 이번 전시는 블라인드 연작의 결정판 같다. "블라인드 작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생각한 단어인 '누스(그리스어로 지성, 이성을 뜻함)'를 머리 밖으로 처음 꺼냈어요." 작품 제목 겸 전시 제목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스(Nous)'엔 10년 묵은 여정이 농축돼 있다.
양혜규는 근래 가장 활발히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한국 작가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독일로 건너가 활동했다. 지금은 베를린과 서울을 오가며 작업한다. 2009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 2012년 독일 카셀 도쿠멘타 초청 작가, 2015년 중국 베이징 울렌스 현대미술센터, 지난 4월 독일 함부르크 쿤스트할레 개인전…. 숨 가쁘게 질주 중이다.
매년 350만명이 찾는 세계적인 관광 명소 퐁피두는 또 다른 의미다. 어림잡아 두 달 전시 기간(9월 5일까지) 관람객이 60만명 정도다. 양혜규는 뜻밖에 "퐁피두와의 첫 만남에 '노(No)'란 답을 가지고 갔다"고 했다. "건물 앞뒤 통유리를 통해 종일 빛이 쏟아지고 디자인도 세요. 작가가 절대 이길 수 없는 공간 같았어요." 그러나 퐁피두의 진정성이 그를 움직였다. "중앙홀은 그저 표 파는 장소가 아니에요. 영화·교육·음악까지 아우르는 복합문화센터 퐁피두의 정신을 상징하는 곳이지요. '포럼(고대 로마의 광장)'이란 특별한 이름을 붙인 이유죠." 니콜라 리우치-구트니코프 퐁피두 큐레이터는 "기념비적 구조물로 퐁피두의 정신을 살려줄 최적의 작가가 양혜규였다"고 설명했다.
건물이 지닌 압도적인 개성을 양혜규는 슬기롭게 활용했다. 1977년 퐁피두를 설계한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영국)와 렌초 피아노(이탈리아)는 모더니즘 실험 정신으로 건축의 문법을 뒤흔들었다. 내장이 몸 밖으로 튀어나온 것처럼, 건물 안에 꼭꼭 숨겼던 에스컬레이터 같은 설비를 밖으로 드러냈다. '안'과 '밖'의 고정관념을 뒤집어 버린 것이다. 양혜규는 '열림'과 '닫힘'의 경계를 넘나드는 블라인드로 그들의 정신을 이었다.
"B급 취향 같아 좋아하지 않는" 분홍과 옥색을 쓴 데에도 이유가 있다. 퐁피두엔 특별한 상징 색 체계가 있다. 배수관은 녹색, 환기구는 파랑, 전기 배선은 노랑 식으로 칠해 기능을 시각적으로 보이게 했다. 양혜규는 위에서 봤을 때 사각 구조엔 분홍 블라인드를, 사선 구조엔 옥색을 기하학적으로 썼다. 그는 "퐁피두에서도, 블라인드에서도 색은 장식이 아닌 기능적 역할을 한다"고 했다. 퐁피두 상징 색을 피하면서 판매되는 블라인드 색 중 보색(補色)으로 찾은 게 분홍과 옥색이었다.
"논리적으로도, 조형적으로도 단단한 양혜규 작품에 놀라고, 그녀의 완벽주의에 두 번 놀랐어요." 큐레이터의 말을 듣던 양혜규가 야무진 말투로 받아쳤다. "모든 전시가 제 인생의 일부예요. 하나라도 대충 하면 인생의 질이 나빠질 수밖에 없잖아요. 전 저질(低質)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