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이다!"

1978년 소련 고고학자 빅토르 사리아니디(1929~2013)는 아프가니스탄 북부의 틸리야 테페(Tillya Tepe) 유적을 발굴하고 있었다. 틸리야 테페는 우즈베크어로 '황금 언덕'이란 뜻. 배화교 신전의 서쪽 구역에서 한 인부가 황금 원판을 발견했다. "이윽고 무덤 하나가 곡괭이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20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고대 박트리아의 공주가 우리 눈앞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빅토르의 회고록)

발견 소식은 곧 세계 각지로 퍼졌다. 소련의 노보스티 통신은 "투탕카멘 왕묘의 발견에 필적하는 20세기 고고학상 최고의 대발견"이라고 했다. 다음해 2월까지 이어진 발굴에서 무덤 6개가 조사됐다. 4호 무덤을 제외하면 모두 여성들이었다. 출토된 유물 2만여점은 곧바로 비행기로 수송돼 카불박물관으로 옮겨졌다.

순도 98~99%의 황금 금관이 황홀하게 빛난다. 아프가니스탄 틸리야 테페 6호 무덤에서 출토된 1세기 금관이다. 오른쪽 작은 사진은 신라 서봉총 북분에서 출토된 금관(보물 339호).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이영훈)은 고대 아프가니스탄의 역사와 문화를 국내 최초로 소개하는 특별전 '아프가니스탄의 황금문화'를 5일부터 개최한다. 국립 아프가니스탄박물관 소장품 1400여점을 소개한다. 이란 고원 동북단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은 타지키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이란·파키스탄에 둘러싸인 내륙국이다. 이 지역은 유럽·중국·인도를 잇는 문명의 교차로였다. 토착 요소와 외래 요소가 결합해 꽃핀 아프간의 고대 문화는 한반도를 비롯해 주변 지역의 문화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화려한 유물들은 아픈 사연을 품고 전 세계를 유랑 중이다. 1989년 박물관 직원들이 전란을 피해 주요 유물을 대통령궁에 있던 중앙은행 지하 금고에 숨긴 덕분에 살아남았다. 7명의 열쇠지기들이 목숨을 걸고 열쇠를 지킨 끝에 2004년 이들이 모여 금고를 열면서 세상에 다시 나왔다. 이후 전 세계 주요 박물관을 돌며 전시 중이다. 2006년 파리 기메박물관을 시작으로 11개국 18개 기관에서 전시했으며 한국은 12번째 개최 국가다. 파괴 우려 때문에 아프간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쿠샨 왕조의 여름 수도로 번영했던 베그람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 유물들.

[아프가니스탄은 어떤 나라?]

전시장은 황금의 향연이다. 특히 틸리야 테페 6호 무덤에서 출토된 1세기 금관이 눈 부신 빛을 발한다. 나무 모양 세움장식 위에 반짝이는 황금 영락(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등이 5~6세기 신라 금관과 똑 닮았다. 좌우 4개의 세움장식 윗부분에는 나무 위에서 서로 부리를 맞대고 있는 듯한 새 두 마리가 대칭적으로 묘사돼 있다. 백승미 학예연구사는 "나뭇가지 세움장식, 새와 영락 장식 등 신라 금관과 동일한 모티브를 지니고 있어 신라 금관의 기원을 밝힐 연구 자료로 일찍부터 학자들의 관심을 모은 유물"이라고 했다.

학계 일각에선 "신라 금관의 어머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직접적으로 신라 금관에 영향을 끼쳤다고는 볼 수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특정할 수 없는 어느 기원지에서 출발해 각각 아프간과 신라로 전파돼 만들어진 '형제 금관' 정도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신라 금관과 제작 시점이 300~400년 이상 떨어진 데다 세부 제작 기법과 형태에서도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틸리야 테페 금관은 신라 금관과 달리 언제든지 해체·재조립이 가능한 '분리형 금관'이다. 박물관은 "언제든지 분리해서 들고 이동할 수 있게 만든 유목민 특성이 반영됐다"고 했다.

전시는 기원전 2000년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의 역사를 네 시기로 나눠 보여준다. 귀고리·목걸이·관뿐 아니라 입고 있던 옷과 시신을 감싸던 천까지 금으로 장식한 그들의 무덤은 당시 유라시아 중심에서 활약했던 유목민들의 광범위한 교역 활동을 보여준다. 발굴품에선 그리스·로마·중국·인도·스키타이-시베리아 등 다양한 문화권 요소들을 볼 수 있다. 9월 4일까지. (02)2077-9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