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경(46) 인제대 겸임교수는 '런던 미술관 산책'과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같은 책을 펴낸 스테디셀러 작가다. 2009년 그는 만 39세에 아이 둘을 데리고 영국 유학을 떠났다. 월간지 '객석' 등에서 7년간 기자 생활을 한 그는 한 해 전에 영국 글래스고대 문화콘텐츠산업 박사과정에 입학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1년 동안 입학을 미룬 채 줄곧 망설였다. "마흔이 다 되어서 떠난 영국 유학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 반(半) 두려움 반이었다"고 했다. 스코틀랜드 특유의 억센 억양 때문에 일상생활부터 녹록지 않았다. 전 교수는 "안 그래도 못하는 영어인데 글래스고의 억양에 적응하지 못하다 보니, 캠퍼스를 통틀어 내가 가장 영어를 못하는 것만 같았다"고 했다. 아들과 딸아이를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집과 학교만 오가는 생활을 4년간 반복했다. 2013년 그는 정부의 정책 변화가 문화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쓰고 귀국한 뒤, 예술 비평가로 활동 중이다.
전 교수는 최근 '예술, 역사를 만들다'(시공아트)를 펴냈다. 고대 이집트 문명부터 1·2차 세계 대전까지 5000년의 세계사를 예술사(藝術史)의 관점에서 조명한 책이다. 참고문헌을 포함, 630쪽에 육박한다. 이 책에서 그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의 집권 과정 속에서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 세계가 변모하는 과정을 살피고,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이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팽창에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짚었다. 시대와 예술을 종횡무진(縱橫無盡)하는 책의 마지막 쪽에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쓰지 않듯이, 만약 우리의 삶이 늘 평온하고 만족스럽기만 하다면 우리는 예술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은 우리가 제한된 현실 속에서나마 자유와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영국 여행과 유럽 문화 탐방에서 출발한 그의 지적 호기심이 예술사 전반으로 퍼져 나간 것도 돌아보면 유학 시절의 경험 덕분이다. "글래스고 켈빈그로브 미술관의 전시실에는 '모든 그림은 이야기를 들려준다(Every picture tells a story)'는 문구가 적혀 있어요. 말 그대로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사연, 예술적 의미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요. 전시실을 둘러보다가 문득 생각했어요. '모든 예술에 이야기가 숨어 있다면, 그 이야기를 찾아내 들려주는 것도 내 일이 될 수 있겠다'고."
그가 2013년 귀국한 뒤 서울·대전·대구의 공연장에서 4년째 강의하는 것도 당시 결심 때문이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처음 강의할 때는 원고지 100매 분량의 강의안을 작성해서 모두 외웠다고 한다. 이번 책을 탈고한 뒤에도 전 교수는 두 권의 예술 서적을 더 쓸 계획이다. 예술과 도시를 다룬 '예술, 도시를 만나다(가제)'와 '예술, 인간을 말하다'를 내후년까지 마치겠다는 목표다. 그는 "천일 넘게 밤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던 세헤라자데처럼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끊이지 않고 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