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할리우드 영화 '케인호의 반란'은 '미 해군에서 선상 반란은 한 번도 없었다'라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태풍이 몰아치는 급박한 상황에서 함장 험프리 보가트가 강박 증세를 보인다. 대원들은 부함장을 중심으로 지휘권을 빼앗아 위기를 넘긴다. 예상을 뒤엎는 반전과 긴박한 법정 장면이 관객을 빨아들인다. 그러나 자막과 달리 미 해군사(史)에 두 건의 선상 반란이 있었다. 1842년 소머스호와 1849년 유잉호 사건이다.
▶영국은 '선상 반란은 반드시 제압한다'는 전통이 있었다. 1789년 타히티 섬과 호주 사이 남태평양에서 '바운티호의 반란'이 일어났다. 반란 선원들은 망망대해에서 함장과 선원 열여덟 명을 보트에 태워 추방했다. 함장을 비롯한 일행은 48일 표류 끝에 6400㎞ 떨어진 섬에 상륙해 가까스로 귀국했다. 영국 정부는 전통에 따라 524t급 쾌속함 판도라호를 반란자들이 머물던 타히티 섬에 보내 체포했다. 주모자 셋을 교수형에 처했다. 이 사건은 세 차례나 영화로 찍어 각각 클라크 게이블, 말런 브랜도, 멜 깁슨이 주연했다.
▶끝없는 바다를 떠 가는 배에서 선장의 권한은 막강하고, 막강해야 한다. 배 위에서 행정권은 물론 징계권과 사법경찰권까지 갖는다. 우리나라 선원법도 선장에게 문제 있는 선원을 구금·체포할 권한을 주고 있다. 선장은 항해 중에 사람이 죽으면 바다에 수장(水葬)할 수도 있다. 그래도 선상 반란이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생기곤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996년 페스카마호 사건이다. 원양어선 페스카마가 사모아 섬 부근 바다를 지날 때 중국 동포 선원 여섯 명이 열악한 작업 조건과 폭력에 반발해 들고 일어났다. 이들은 한국인 선원 일곱 명을 포함한 열한 명을 살해한 뒤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 여섯 모두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이듬해 항소심에서 주범을 제외한 다섯 명이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어제 인도양 세이셸군도 인근 해상을 지나던 우리 참치잡이 원양어선에서 또 선상 반란이 일어났다. 베트남 선원 두 명이 술에 취해 선장과 기관장을 살해했다. 하루 쉬는 날 선장이 "수고 많았다"며 양주 두 병을 나눠 마시게 한 게 화근이었다고 한다. 제각기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이 배라는 좁은 공간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철저히 수사해 엄벌해야겠지만 원양어선들이 외국인 선원을 제대로 대우하고 인격적으로 다루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상 반란이 거듭되는 것은 근무 환경부터 인력 채용, 처우까지 운항 전반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