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前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 위원

[일본, 위안부 합의 어기는 발언 말아야...]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신청서를 8개국 14개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제출했다.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등재 신청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에 중국이 단독으로 신청했으나 등재하지 못했다. 필자는 그것이 기각이 아니라 공동 등재를 권유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으며, 이번 등재 신청은 그런 권유에 부응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계기록유산 사업의 취지는 인류가 중요한 기록물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보편적인 열람 기회를 제공하자는 것이다. 등재 심사에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치판단, 그러니까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 하는 판단은 철저히 배제한다. 심사위원들은 신청 기록물이 인류가 공동으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정한 기록물인가를 심사할 뿐이다. 지금까지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기록물의 내용은 ①찬란한 역사적 업적 ②역사적 전환점 ③아픈 기억 등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번에 등재 신청한 위안부 관련 기록물은 셋째 항목에 해당하는데, 이 문건을 등재하는 것은 인간의 잔인성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다시는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서인도제도의 노예제도,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에 관한 문건이 이런 의도로 등재됐다.

유네스코의 다른 유산 사업이 모두 정부 간 협약을 맺고 참가국의 투표를 통해 등재를 결정하는 반면 세계기록유산은 전문가 집단의 토론을 통해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이 사업은 특정 국가와 집단의 이해에 근거한 정치적 주장을 차단하고 지적(知的) 토론을 통한 객관적 의사 결정을 전제로 한다. 1992년에 시작된 이 사업은 2013년 회의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됐지만 2015년에 난징 대학살 관련 기록물의 등재에 일본 정부가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정치적 색채가 개입되기 시작했다. 이번에 위안부 관련 기록물의 등재 신청이 보도되자 일본 정부는 다시 반발했다. 각료 한 사람이 총력을 기울여 등재를 저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고, 강제 동원에 대한 반박 자료를 등재 신청해서 맞불을 놓겠다고 나선 우익단체도 있다. 이 사업의 순수한 취지를 생각할 때 이런 반응은 안타까운 일이다. 일본은 이 사업을 공격과 방어로 생각하는데, 그것으로 인해 이 사업의 순수한 취지가 훼손될 염려도 있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등재 기록물을 보유한 우리로서는 일본의 이런 태도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번 등재 신청은 위안부라는 제도가 존재했으며 무수한 여성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 고통을 겪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류 공동의 기억으로 추천하는 것뿐이다. 8년간 심사위원으로 활동한 필자는 이 기록물의 등재에 대해 낙관한다. 하지만 설사 등재에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패배로 생각할 이유는 없다. 패배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일본과 똑같아지는 것이다. 8개국 시민단체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힘을 합해 등재 신청서를 만든 것만으로도 의의는 작지 않다. 등재 신청서에 담은 순수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담담하게 결과를 기다리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