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떠난 지 29년이 되었네요. 오랜 날이 지났건만 이 못난 철부지 아내의 눈에선 눈물이 자꾸만 흘러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못나서 정말 미안해요."(2015년 6월)
국가유공자들이 묻힌 국립 대전현충원에 설치된 '하늘나라 우체통'이 6일 다섯 번째 현충일을 맞는다. 하늘나라에 있어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얼굴들에게 보내는 유족과 지인, 일반 방문객들의 사연이 지난 4년간 이 우체통에 쌓였다. 이 우체통은 각 묘지 앞에 놓인 편지가 비바람에 훼손되지 않도록 2012년 6월 1일 현충원 정문 민원 안내실 앞에 설치됐다.
그동안 우체통에 들어온 편지는 2만 통이 넘는다. 이 우체통에 가장 처음 편지를 넣었던 전태웅(74)씨는 요즘도 20여 년 전 군복무 중 숨진 아들에게 '답장 없는 편지'를 적어 보낸다. 전씨는 아들 생일 사흘 전인 지난달 23일 "찬란한 오월에 태어나 미처 네 인생을 피워 영글지도 못하고 먼저 떠났구나. 네 묘비에 내 뺨을 대고 네 체취를 맡으려고 했다. 이제 아빠도 머지않아 너를 따라 하늘나라에 올라가 네 곁에서 지내겠지" 하는 편지를 보냈다.
한 소방관은 임무 중 생을 마감한 동료 고(故) 어수봉 소방관에게 마음을 전했다. "하늘로 가는 우체통이 개설됐다기에 안부 편지 보낸다. 당신이 우리 곁을 떠난 지 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가슴 시리도록 보고 싶은데…. 먼 훗날 늙었다고 몰라보지 마라." 어 소방관은 2004년 4월 12일 새벽 경기 안산시 한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러 들어갔다가 질식사했다.
아동문학가 강모(79)씨는 군의관으로 복무하다 숨진 아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A4용지 5장 분량의 동화를 써 보냈다. 그의 아들은 1998년 12월 부상병을 수술한 후 심장마비로 숨졌다. 과로사였다. 강씨는 '하늘나라 의사'라는 동화에서 신(神)의 말을 빌려 "○○이(아들) 같은 유능한 의사가 하늘나라 병원에 꼭 있어야 되겠기에 불렀느니라. 천사들이여! 이 의사를 오늘부터 하늘나라 병원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잘 안내하여 주시오"라고 적었다.
일반 참배객의 편지도 많이 늘었다. 한 시민은 천안함 46용사 전원에게 '감기 조심하라'며 일일이 편지를 보냈다. 제주도 출신인 고 차균석 중사에게 "계신 그곳과 제주의 푸른 기운이 비슷하겠죠?"라고 묻고, 고 이용상 하사에겐 "여러분에게서 따스하고 계산 없는 마음으로 이웃을 위하는 걸 배웠다"고 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당시 숨진 문광욱 일병에게 "일병님과 가족분들이 계신 자리에 사랑과 용기가 넘치길 응원한다"는 편지를 보낸 참배객도 있었다.
현충일이 있는 6월이면 학생이나 군·경, 회사원 같은 단체 참배객이 우체통을 많이 찾는다. 지난 1일 대전 시내 한 고등학교 1학년 학생 10여 명이 견학차 현충원에 왔다가 엽서를 빼곡히 채워 우체통에 넣었다. 이 학교 최강현(16)군은 "순국선열께 '감사하다'는 편지를 쓰는 과정에서 그동안 나라를 지켜주신 분이 정말 많다는 걸 새삼 느꼈다"며 "나도 군대에 가면 '가족과 친구를 내가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이 들도록 열심히 할 것"이라고 했다. 이 학교 최덕기 교사는 "최대 140자(字)로 제한된 트위터 같은 SNS 단문(短文)에 익숙한 요즘 학생들이 긴 편지를 쓰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고 말했다.
우체통에 담긴 편지는 정기적으로 현충원 직원들이 거둬 보관하고 있다. 현충원은 이 편지를 모아 2013년에 이어 올해 말 두 번째 추모집을 발간할 계획이다. 현충원 박경로 주무관은 "우체통이 소중한 가족과 지인을 잃은 분들을 위로하고, 순국선열과 남은 분들을 지속적으로 연결하는 소통 창구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