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 | 줄리언 반스 지음 |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408쪽 | 1만5000원
맨부커상은 작가 한강 덕분에 우리에게 익숙해졌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작가 줄리언 반스(70·사진)로 기억되는 상(賞)이기도 하다. 2011년 반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맨부커상을 받았다. 영국의 대표 작가라는 명성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늦은 수상. 문학상은 가끔 명성 높은 작가의 뒤늦은 태작에 시상하는 우(愚)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2011년의 맨부커는 아니었다. 받아야 할 작품으로 늦은 상을 받은 반스에게 대내외 지지가 이어졌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수상작인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씨앗과 뿌리가 되었던 에세이. 하지만 2011년의 맨부커처럼, 반스의 에세이를 선택한 이유가 명성 때문일 수는 없다. 죽음과 소멸에 대처하는 우아하고 익살스러운 사유(思惟)의 축제. 이는 Books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기회 있을 때마다 소개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헨리 마시의 '참 괜찮은 죽음'이 현장에서 뛰고 있는 의사의 글로 쓴 사투(死鬪)였다면,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은 소멸과 필멸을 두려워하면서도 유머를 놓치지 않는 문장가의 간증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맞이해야 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이 글의 원천이지만, 익살만은 종횡무진이다.
반스의 부모 역시 요양시설에서 마지막을 맞았다. 잇단 뇌졸중에 쇠락해가던 아버지의 마지막 병문안을 갔던 자리. 조금 형편이 나았던 반스의 모친은 참으로 그녀답게 물었다고 한다.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지난번 왔을 때 못 알아봤잖아" 아버지의 대답 역시 당신다웠다. "아무래도 내 마누라지 싶은데."
작가에게 죽음의 공포를 처음 일깨웠던 순간은, 유년 시절 '헛간의 학살'이었다. 문설주와 죔쇠를 이용해서 비틀었던 닭의 목. 몸통만 남아 피 흘리며 뛰어다니던 슬픈 짐승을 목격하는 경험이, 지구 반대편 작가만의 두려운 추억만은 아닐 것이다.
이 세련된 에세이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은 동료와 선배 예술가에 대한 반스의 관찰과 추적이다. 주제는 역시 죽음. 프랑스의 몽테뉴(1533~1592)는 죽음에 반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다. 지붕에서 타일 한 장이 떨어질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라. 네 입 안에선 언제나 죽음의 맛이, 네 혀 끝에선 언제나 죽음의 이름이 감돌아야만 한다. 이런 식으로 죽음을 예견할 때 죽음의 예속에서 스스로 해방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 우리에게는 '홍당무'의 작가로 알려진 쥘 르나르(1864~1910)는 반스가 가장 존경한 선배 중의 한 명이었다. 르나르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신의 존재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존재하지 않는 편이 그의 평판엔 더 좋을 것 같다." 엽총으로 자살한 부친을 유년 시절 직접 수습해야 했고, 바로 위 수다스러웠던 형은 서른일곱에 협심증과 호흡곤란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우물에 빠져 숨져 있는 모친을 발견하고 끌어내야 했던 비극의 아들 르나르.
반스가 예로 들고 있는 수많은 사례가 있다. 과량의 진정제가 없다면 헛소리를 지껄이다 죽었을 영국 시인 필립 라킨, 내세가 없다는 소신을 명망 있는 철학자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철두철미했지만, 말년에 소파 뒤에서 바지를 내리고 똥을 누는 것으로 절멸의 두려움에 투항한 서머싯 몸, 자기가 작곡한 음악이 연주되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죽은 라벨, 스탕달, 플로베르, 괴테, 쇼스타코비치, 스트라빈스키…. 번역자 최세희씨는 "반스는 자신의 두려움이 인류의 두려움임을, 오랜 인류의 역사임을, 보편적으로 진실함을 입증한다"고 적었다.
엽기적 비극이면서도 웃지 않을 수 없는 이 해외 토픽 사례를 보라.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한 정신 나간 사내. 동물원의 사자 우리 안으로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신을 믿는 자는 사자들 속에 있어도 무사할 것이다." "신이 존재한다면 날 구해줄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암사자가 사내를 일차로 때려눕힌 뒤 경동맥을 물어뜯었다. 반스는 묻는다. 다음 중 이것이 입증해 준 사실은.
①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② 신은 존재하지만 그런 비열한 속임수에 넘어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리 없다
③ 신은 존재하며, 이는 자신이 풍자의 대가임을 입증한 사례다
④ 위의 어느 항목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죽음을 극복한 사람은 없다. 예술가 역시 마찬가지라는 게 우리에게는 위안일까. 이번 주말 반스의 질문을 통해 죽음에 대처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고민해 보시기를. 원제 Nothing to be frightened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