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두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만들어 보이는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전쟁 기간 내내 그의 V자는 독일 나치에 맞선 연합국의 신념과 확신을 상징하는 동작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상·하권)

윈스턴 처칠 지음|차병직 옮김|까치|684·786쪽|각 2만5000원

윈스턴 처칠의 ‘제2차 세계대전’이 우리말로 번역·출판됐다. 격동의 현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인 원전 자료이자 기록문학의 백미인 이 책으로 처칠은 195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제2차 세계대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때 처칠은 ‘불필요한 전쟁(the unnecessary war)’이라고 답했다.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불필요한’ 전쟁으로 5000만명 이상이 죽었다. 체임벌린 전임 총리의 유화 정책이 일을 그르친 요인 중 하나다. 독일 나치에 양보하면 전쟁을 피할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처칠은 이런 코멘트를 했다. “우리는 불명예와 전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우리는 불명예를 선택했고 그 결과 전쟁도 치르게 되었다.” 국가 안보와 세계 평화가 달린 문제에서 지도자는 적의 본질을 냉철하게 판단한 뒤 필요하면 과감하고 용기 있게 대처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난 후 곧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은 패배했다. 미국은 개입을 피하려 했고, 소련은 히틀러와 손잡은 채 음흉하게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처칠의 지도 아래 영국만 홀로 나치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다. 1940년 5월 13일, 임시 소집된 하원에서 그는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피와 노고와 눈물과 땀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명료하면서도 힘 있는 연설은 의회와 온 국민을 감동시켰다. 우리의 정책이 무엇인가? 기괴한 폭군에 대항하여 우리의 모든 힘을 합쳐 바다와 지상과 하늘에서 싸우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승리다. 그것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모입시다. 그리고 힘을 모아 함께 나아갑시다”라는 강렬한 메시지로 연설을 끝맺었을 때, 하원은 만장일치로 처칠의 견해에 동의했다. 국민에게 진심으로 호소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 이것이 나치나 파시스트, 혹은 스탈린 치하 소련 같은 저급한 체제가 끝내 승리할 수 없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힘이다. 처칠은 군사 전문가이고 능력 있는 전략가이기 전에 말과 글의 힘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정치가였다. 고만고만한 정치력마저도 말로 절반 이상 까먹고 있는 우리 정치인들로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수준이다.

1945년 7월, 포츠담 회담 이후 영국의 총선거에서 처칠이 이끄는 보수당이 패배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시대적 영웅을 영국민들 스스로 저버린 이유는 정확히 알기 힘들지만, 새로운 전후(戰後) 세계를 원하는 국민의 선택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처칠이 필생의 사업으로 삼은 것이 이 저서의 집필이었다. 1946년부터 시작하여 1953년에 완간된 회고록(전 6권)은 인류가 겪은 최대 비극과 그 비극을 이겨내는 불굴의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이 책은 실로 위대한 저작이다. 뭇 정치가들의 조잡한 자기변명이나 편파적인 자기 자랑과는 격이 다르다. 수많은 공식 자료들과 개인적인 서한, 메모 등을 이용해서 세계대전과 전후 세계의 큰 흐름을 기술한 이 책은 오늘날의 세계에 대해서도 많은 힌트를 주고 있다. 목하(目下) 논의되는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논쟁에서도 영국을 포함한 ‘유럽합중국’이라는 처칠의 당초 구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출판된 책은 6권 전권이 아니라, 처칠의 회고록 작성을 도왔던 영국의 변호사 데니스 켈리가 편집한 발췌본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처칠 자신이 평가하듯이 지나치게 세세한 사실들을 줄이는 대신 사태의 전모를 빨리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발췌본이라지만 이 자체가 2000쪽에 육박하는 방대한 양이다.

이 책은 현대와 바로 닿아 있는 역사의 기록이다. 우리가 맞닥뜨려야 할 세계의 흐름을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한번 읽어보아야 할 중요한 저서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