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백
흔히 사람들은 가방을 구입할 때 재질, 색깔, 크기, 용도, 브랜드 철학 등을 고려해 선택한다. 다른 가방과 달리 에코백에는 여기에 하나의 키워드가 더 추가되는데, 바로 '환경' 또는 '개념'이다.
환경과 패션 사이의 줄다리기를 이어가는 과거와 현재의 에코백을 살펴봤다.
'에코백'은 '에코'라는 이름처럼 화학적 합성소재나 짐승의 가죽·털 등을 사용하지 않고 친환경적인 소재로 만든 가방이다. 90년대 유럽에서 비닐봉지와 종이백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등장했고 이후 동물 가죽으로 만든 비싼 명품백에 대한 회의를 느낀 사람들이 차츰 들기 시작했다. 에코백의 출발과 확산에는 환경을 생각하고 생명을 해치지 않겠다는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장바구니 형태로 나온 천가방을 모두 에코백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에코백은 만드는 재료와 방법에 따라 진정한 에코백인지 아닌지 구분되어야 하는 가방이다. '진짜 에코백'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천가방이라는 형태보다는 가방이 만들어지는 재료와 방법에 대한 '친환경적인 태도'가 중요하다고 본다.
착한 재료를 사용한 에코백
엄밀히 얘기하면 생명을 해치지 않는 재료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가방만이 에코백이라고 불릴 수 있다. 에코백으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재료는 형광, 표백 등 화학처리를 하지 않은 천연 섬유이다. 주로 캔버스 천이라고 많이 불리는 광목 원단을 많이 사용한다. 천 뿐만 아니라 천 위에 들어가는 프린팅도 천연 염색 방법을 사용하여 폐기되었을 때도 분해될 수 있는 재료만으로 가방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그 다음 많이 사용하는 재료는 폐기물이다. 버려지는 현수막, 신문지 등을 재활용하여 가방을 만드는 경우들이 모두 포함된다. 일단 폐기물을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방법으로 최근에 부는 업사이클링 열풍과 함께 주목받고 있는 방법이다.
착하게 만든 가방 에코백
만드는 과정에 의하여 에코백이라고 불리는 것도 있다. 공해와 폐기물들을 남기지 않는 친환경적 공정과정을 거치거나, 만드는 제작자들에게 공정한 임금을 제공하는 등 윤리적인 제작방식을 통해 탄생한 에코백이다. 버려진 재봉틀을 재활용하고, 자투리 천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에코백과 셔츠 등을 만드는 창신동 봉제공장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단순한 상품으로서 에코백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과정에서 환경보호라는 의식을 가방에 불어넣는 셈이다.
그러나 최근 에코백은 '친환경적' 성격보다는 자신을 드러내는 '패션 아이템'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에코백이 패션 아이템으로서 대중화된 것은 2007년 영국의 세계적 패션 디자이너 아냐 힌드마치가 "나는 비닐백이 아니랍니다 (I'm not a plastic bag)" 쓴 가방을 내놓으면서 부터이다. 린제이 로한 등 해외 유명 연예인이 들면서 에코백 열풍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우리 돈으로 1만원 정도 가격에 팔렸던 이 에코백은 입소문을 타면서 구하기 힘들 정도로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장바구니로서 환경적 목적이 강했던 가방이 '패션'도 챙기고 소위 말하는 환경을 생각하는 '개념'도 뽐낼 수 있는 아이템이 된 것이다.
여름 패션의 완성
그래서 요즘엔 딱히 환경에 관심이 없더라도 대부분 에코백 한두 개씩 가지고 있다. 특히 에코백 문화가 확산된 지 8년여가 흐른 2016년 여름엔 '에코백'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부터 유행한 놈코어룩(Normcore Look)과 애슬레저룩(Athleisure Look)이 이번 여름에도 강세를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단조로운 기본 아이템만으로 코디하는 놈코어룩과 편안하면서 스포티하게 입는 에슬레저룩은 에코백이 가지고 있는 편안한 느낌과 잘 어울린다. 또한 캔버스 원단의 소재는 가볍고 세탁이 쉬워 여름 가방으로도 손색이 없다. 대부분 에코백은 어깨에 메는 숄더백 형태가 기본이나 최근에는 백팩이나 복조리 형태 등 다양한 형태로도 출시되고 있어 사람들의 기호에 맞추고 있는 추세이다.
애슬레저룩(Athleisure Look) : 애슬레틱(Athletic·운동)과 레저(Leisure·여가)의 합성어. 방수·방풍·투습 등 운동에 필수적인 기능은 필수로 갖추되 도심에서 평상복으로 착용하기에도 손색없는 디자인 의상이다. 일상생활과 레저 두가지 활동에 모두 어울리면서 스포티함을 강조한 패션이다.
에코 패션
으로 만든 티셔츠를 만들거나,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티셔츠를 판매해 '친환경적 패션과 소비'를 강조하는 브랜드들이 늘어났다.
미국 디자이너인 린다 라우더밀크(Linda Loudermilk)는 대나무·콩·미역 등 친환경 섬유로 만든 컬렉션을 선보였고, 캐주얼 브랜드 리바이스는 100% '유기농 청바지'를 출시했다. 중저가 의류를 생산하는 패스트패션(Fast Fashion) 업체 자라, H&M 등도 지난해부터 '프리미엄 유기농 섬유'를 사용한 제품을 선보였다.
명품 고가 에코백의 등장
패션 아이템으로서 에코백이 주목을 받자 국내외 유명 브랜드들도 에코백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는 에코백 치고는 가격대가 높은 제품들도 있었는데, 오히려 브랜드 로고나 이미지 때문에 더 불티나게 팔렸다.
스웨덴 브랜드 아크네 (Acne)의 에코백은 우리나라 돈으로 약 50만원이다. 영국 브랜드 마거릿 하월
의 에코백은 약 7만5000원, 프랑스 브랜드 아페세(A.P.C.)의 에코백은 16만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다. 또한 최근 인기리에 끝난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도 주인공 송혜교가 매고 나온 '제이에스티나'의 에코백은 10만원이 넘는 가격에도 품절 사태를 일으키며 인기를 끌었다.
에코백 중에서는 비싼 가격이지만, 다른 명품 가방에 비해서는 저렴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명품 에코백을 더 찾는 경향도 있다. 환경보다는 에코백과 브랜드가 주는 이미지를 소비하기 위해 들고 다닌다고 볼 수 있다.
고가의 명품 에코백과 마케팅 수단으로서의 에코백이 범람하고, 환경보호라는 본래의 의도가 브랜드 이름에 가리는 일이 벌어지자 다시 에코백 본연의 성격과 취지를 살리자는 움직임이 등장했다. 이들은 에코백을 만드는 재료나 제작방식을 '환경'이라는 취지에 맞게 지원하고 사회적 이익을 확대하기 위해 힘쓴다.
독립출판 '유어마인드'를 운영하는 모모미씨는 기존 싼 천가방이라는 에코백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원모어백'이라는 에코백 판매를 시작했다. 여러 작가들과 협업해서 에코백이 본래 가졌던 윤리적 소비라는 성격에 맞게 공정 임금을 지키고, 윤리적 제작 방식으로 만든 에코백을 판매한다. 또한 값싼 천가방이라는 에코백의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천의 소재와 디자인에도 정성을 들여 오래 쓰고 들 수 있는 가치있는 가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총선과 대선이 있었던 2012년, 사회적기업 '터치포굿'은 선거 이후 버려지는 현수막을 재활용해 가방과 소품으로 만들었다. '2012 대선 에코백 프로젝트'로 당시 새누리당·민주통합당 등 각 당과 '업사이클링 협약'을 맺어 에코백으로 재활용할 현수막을 미리 정해 에코백으로 만들었다. 현수막의 무분별한 제작을 줄이고 환경을 생각하고자 하는 진짜 '에코백'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변화 이끄는 에코백
스페인 통역가였던 신진영 씨는 '욜로백'이라는 에코백을 직접 디자인하고 만들어 파는 회사를 차렸다. 단순히 에코백을 만들어 파는 것이 아니라 에코백 하나를 판매할 때 마다 미혼모 가정의 아이들에게 아동도서를 기부한다. 회사명이자 백의 이름 '욜로'는 영어로 '너는 단 한번 산다 (You only live once)'는 문장의 약어이다. TV프로그램 '비정상회담'으로 유명한 다니엘 린덴만이 백 제작에 동참하기도 했다.
성주희 씨가 대표로 있는 에코백 브랜드 '위브아워스'는 만드는 과정에서 버리는 천이 하나도 없는 '마이 제로백'이라는 에코백을 만들어 판다.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소비자로부터 유행이 지난 안쓰는 가방을 받아서 제3세계에 보내는 '브링유어스토리'도 진행 중이다. 에코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정작 정말 '에코'한 백인지는 알지 못한 채 유행으로만 소비되는 에코백의 원래 취지를 되찾으려는 노력이다.
패션 토털 프린팅 브랜드 '소프트앤코(soft & co)' 김형찬 대표에 따르면 선진국일수록 그리고 국민총행복(GNH, Gross National Happiness)지수가 높을수록 에코백을 든 사람이 많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도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오가닉, 힐링 등 순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것들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에코백은 이런 흐름에서 시작한 아이템이다. 패션 아이템으로서 간편하고 단순한 멋을 위해 찾는 것도 좋지만 애초에 에코백이 시작하게 된 계기를 생각하면서 구입하고 사용한다면 조금 더 가치있는 소비활동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