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 내정자.

전격 사임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이어 2018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을 맡게 된 이희범 내정자는 관운(官運)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의 불허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노무현 정부 때 산자부 장관을 맡은 이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는 동안 3개 정권에서 두루 요직을 맡았다. 정권 교체도 그의 ‘관운’에는 장벽이 되지 못했다.

이 내정자는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산자부 장관으로 발탁돼 2006년 2월까지 2년 3개월 동안 장관직을 수행했다. 장관 임기를 마치고 바로 한국무역협회 회장에 올랐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2009년 2월까지 무역협회를 이끌었다. 무역협회장 자리가 정부의 용인 없이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야 정권 교체가 그에겐 큰 변수가 아니었던 셈이다.

무역협회장에서 물러난 그는 STX에너지·중공업 총괄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STX 회장으로 있으면서 2010년 8월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으로 추대돼 2014년 2월까지 활동했다. 주요 경제 5단체 중 두 곳의 수장을 지낸 흔치 않은 이력을 가진 것이다.

유동성 위기로 STX그룹이 해체되자 그는 STX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기업에 적을 두고 있지 않은 관계로 얼마 뒤 경총 회장직도 그만두었다. 마땅한 자리가 없던 그를 재계는 가만히 두지 않았다. LG그룹이 그를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불렀다. 그러나 LG로 옮기고 2개월 만에 STX그룹과 관련한 수사가 시작되자, 부담을 느낀 탓인지 고문으로 물러나 앉았다. 이런 그를 박근혜 정부는 다시 동계올림픽조직위원장이라는 중책을 맡긴 것이다.

이 내정자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이처럼 정권이 바뀌어도 민관(民官)을 가리지 않으며 오래 요직을 이어갈 수 있을까. 그를 주변에서 접했던 관가와 재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타고난 성실함과 꼼꼼한 메모 습관이 바탕이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공무원 초년병 시절부터 가장 먼저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생활을 반복했다. 언제 어디서든 꼼꼼하게 메모를 하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불현듯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적어 놓기도 한다. 숫자에도 밝아 부하 직원으로부터 보고를 받다가 잘못된 수치를 바로잡았다는 일화가 많다.

그의 신조는 ‘친구 한 명을 잃더라도 한 명의 적(敵)은 얻지 말자’로 알려졌다. 혹자는 이를 두고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기보다 누구와도 무난히 어울리는 ‘무색무취’한 캐릭터”라고 해석한다. 흔히 정권에 따라 정책 방향이 표변하는 관료에 대해 ‘영혼이 없다’고 비판한다. 이 내정자가 정치적 이념이 다른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도 계속 승승장구한 것도 그런 처신 덕분이라고 꼬집는 사람도 있다.

이 내정자가 공직 사회와 재계를 거치며 화려한 이력을 뽐내지만, 스포츠 분야에선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유치위원장을 맡은 것이 스포츠 분야의 유일한 경력이다. 꼼꼼한 일 처리와 원만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여러 정권에 걸쳐 요직에 기용됐지만, 올림픽조직위원장 내정에 대해 “정치권의 ‘낙하산 인사’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은 2018년 2월9일부터 25일까지 치러진다. 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서 대통령 당선인이 활동하는 기간이다. 평창올림픽 폐막일인 2018년 2월25일은 차기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이 내정자가 조직위원회를 잘 이끌고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그 과실(果實)을 차기 정권에서 또 누릴지 모른다.

경북 안동 출신인 이 내정자는 서울대 공대(전자공학)를 졸업했다. 공학도 출신이면서 1972년 행정고시(12회)에 수석 합격하며 ‘엘리트 관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