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후 5시 20분쯤 한 중년 남성이 부산지방법원 민원실로 들어섰다. 술에 취한 그는 "억울하다. 판사를 만나게 해달라"며 직원에게 신문 뭉치를 들이밀었다. 신문지 안엔 기다란 회칼이 들어 있었다. 그는 법원에서 1시간쯤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연행됐다. 지난달 4일엔 한 지방 법원에서 '휘발유 투척' 사건이 벌어졌다. 한 60대 남성이 쇼핑백을 들고 법정으로 통하는 엑스레이 검색대를 지났는데, 쇼핑백 안에서 노란 페트병이 발견됐다. 보안요원들이 이를 확인하려 하자 그는 "왜 판사를 못 만나게 하느냐"며 병 뚜껑을 열고 안에 든 휘발유를 직원들에게 뿌렸다.

최근 법원 내에서 보안 사고가 잇따르면서 대법원에 비상이 걸렸다. 재판부나 소송 상대방에게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법정 등으로 반입이 금지된 가스총이나 칼, 인화물질 등을 갖고 들어와 난동을 부리는 일이 연거푸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9일엔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울중앙지법 청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서울중앙지법 별관 집행관실을 찾은 김모씨가 법원의 압류 집행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다가 바닥에 시너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질렀다. 법원 관계자는 "다행히 직원들이 곧바로 김씨를 제압해 불을 껐다"며 "조금만 늦었어도 청사에 큰불이 날 뻔했다"고 했다.

특히 재판부와 방청객이 빼곡히 들어찬 법정 내에서의 난동은 인명 사고와 직결될 수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반입이 금지된 칼, 인화물질 등을 법정에 갖고 들어가다 적발된 건수는 작년 한 해만 2590건에 달했다.

대법원은 지하철 개찰구처럼 직원·방문증을 찍어야 출입할 수 있는 '스피드게이트'를 전국 법원 입구에 설치하고 엑스레이 검색대도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스피드게이트가 일부라도 설치된 곳은 서울중앙지법, 특허법원 등 12군데뿐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관련 예산을 확보해 각급 법원에 검색대와 CCTV 등을 추가 설치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