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시장 3단계 개방 내용을 담은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내 로펌들은 글로벌 외국 로펌과 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 됐다. 2단계 시장 개방 때까지 외국 로펌은 국내에 사무소만 설치할 수 있었다. 이젠 국내 로펌과 합작 로펌을 설립해 법률 사무를 처리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개방이 확대된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 일정에 따라 7월부터 영국을 포함한 EU(유럽연합)에 문이 열리고, 내년 3월에는 미국 로펌도 이런 방식으로 국내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지난 2012년 롭스앤드그레이(Ropes & Gray)가 국내 법률 시장에 처음 진출한 뒤 국내서 활동 중인 외국 로펌은 26곳이다. 외국법 자문사로 등록한 외국 변호사는 96명 정도다. 아직은 규모 면에서도 크지 않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은 세계 100위 안에 드는 대규모 로펌이다. 언제든지 공격적으로 국내 시장에 발을 내디딜 수 있다는 뜻이다.

외국 로펌은 규모 면에서 국내 로펌을 압도한다. 미국 최대 로펌 가운데 하나인 디엘에이파이퍼(DLA Piper)의 연 매출(3조4000억원)은 우리나라 법률 시장 전체 매출(약 3조원)과 맞먹는 수준이다. 변호사 수는 3000~4000명으로 국내 최대 김앤장(600여명)의 5~6배나 된다. 이들은 지금까지 주로 국내 대기업이 해외에서 벌이는 소송을 대행하는 일을 해왔지만, 실제론 국내 기업의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해외채권·지식재산권 등 규모가 큰 소송에서 국내 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대형 M&A 거래 총액 상위 10건 중 6건을 영미계 로펌이 담당했다.

3단계 법률 시장 개방으로 우리 로펌 업계는 지각변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 로펌이 자본력을 앞세워 유능한 변호사들을 싹쓸이해갈 수 있다. 대형 로펌 관계자는 "이미 상당 부분 시장을 잠식당한 아웃바운드(한국 기업의 해외 업무) 분야뿐 아니라 인바운드(해외 기업의 국내 업무) 분야까지 잠식당할 것"이라고 했다. 예컨대 2012~2014년 미국에서 진행된 애플과 특허 소송에서 삼성전자는 현지 로펌인 퀸 이매뉴얼을 선임했는데, 국내 로펌은 한 곳도 끼지 못했다. 아웃바운드 시장에서 국내 대기업과 외국 로펌들의 관계가 두터워질수록 장기적으로 인바운드, 국내 자문 등 기본 업무에까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법률 시장 개방이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개정안은 국내 로펌과 외국 로펌의 합작 법무법인의 경우 외국 로펌의 지분율과 의결권을 최대 49%로 제한했고 설립 후 3년 이상의 업무 경력을 가진 국내외 로펌만이 합작 법무법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안전장치를 뒀다. 법무법인 세종의 강신섭 대표변호사는 "시장을 개방했던 독일은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영미계 로펌이 잠식했지만, 지금은 토종 로펌들이 대부분 제자리를 회복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