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워싱턴 D.C.(미국), 조인식 기자] R.A. 디키(42,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야구 인생엔 롤러코스터라는 말을 붙여도 부족하다. 대개 롤러코스터가 가는 길은 천천히 둘러보면 오르막과 내리막이 몇 번인지 셀 수 있다. 그러나 디키가 지나온 길은 그렇지 않았다.

1996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의 1라운드(전체 18순위) 지명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탄탄대로가 눈앞에 놓여있는 것 같았겠지만 그는 수없는 부침을 반복했다. 처음으로 10승을 올렸던 2010년에 그는 30대 중반이었고, 그때 몸담고 있던 뉴욕 메츠는 7번의 이적 끝에 정착한 팀이었다.

지금은 메이저리그 유일의 캐나다 연고 팀에서 뛰는 그는 지난 시즌을 마치고 무릎 수술을 받았다. 선발 등판을 하루 앞두고 있던 지난 20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오리올파크 앳 캠든야즈의 원정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그에게 무릎은 괜찮은지 묻자 “100% 상태다. 작은 수술이었다. 재활은 5개월 정도 걸렸다. 지금은 아주 좋은 느낌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국 테네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디키는 남다른 문학적 감수성도 지니고 있다. 굴곡이 많은 삶은 글재주에도 도움을 줬고, 그의 자서전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내에도 출판됐다. 한국의 야구팬들 사이에서도 꽤나 인기를 끈 것을 알고 있는지 묻자 그는 “정말인가? 몰랐다. 기분 좋은 이야기다”라며 웃었다.

여담이지만 그의 자서전에는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지 못하던 시절 KBO리그 구단의 제의를 받았던 일화까지 담겨있다. 텍사스에서는 박찬호와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서로의 피칭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학생 같았다”는 것이 박찬호에 대한 디키의 기억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온 이가 불쑥 다가와 대화를 청했을 때도 어색하지만은 않았을 터.

여러모로 변화가 많았다. 강속구로 각광을 받았던 디키는 이제 너클볼러가 되어 있다. 큰 변화가 생겼을 때 어떤 점이 가장 적응하기 힘들게 느껴졌는지 묻자 “강속구 투수에서 너클볼 투수가 된 것을 묻는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다닌 것을 말하는 것인가?”라고 다시 물을 정도로 그는 여러 종류의 변화들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질문을 명확하게 하지 못한 기자의 잘못이기도 했다.

새로운 유니폼을 입을 때 적응하기 힘든 점이 궁금했다고 다시 말해주자 디키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팀이 바뀌면 가족들도 계속 이사를 해야만 했고, 모든 것이 바뀌어야 했다. 식료품점을 찾는 일부터 이웃, 도시 등 모든 것이 달랐다. 편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건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새 환경에 적응했고, 이제는 정착한 가장이자 성공한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어떻게 많은 유혹들을 이겨내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물었을 때, 잠시 고민하던 디키는 “희망”이라는 한 단어로 답했다.

그리고 곧바로 “항상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너클볼이 점점 좋아진 것이 나에게 용기를 가져다줬다”라며 뒤늦게 배운 너클볼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너클볼의 명인 중 하나인 찰리 허프는 피칭 메커니즘과 너클볼 사용 전략을 디키에게 알려줬다. 허프와 디키의 노력은 메이저리그 역사에 또 하나의 새로운 사이영상 수상자를 남기는 결과(디키는 2012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가 됐다.

디키가 지금까지 너클볼을 던질 수 있게 한 두 사람을 꼽으라면 하나가 허프,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계속 그의 공을 받는 포수 조시 톨리다. 토론토에는 러셀 마틴이라는 주전 포수가 있지만 그의 너클볼은 톨리가 홈 플레이트에 있을 때 최고가 된다. “나에게 있어 최고의 포수는 조시다”라는 디키는 “그는 나의 미라벨리(덕 미라벨리 – 팀 웨이크필드의 너클볼을 받아준 전담 포수)다”라는 찬사까지 아끼지 않았다.

목표를 묻자 “월드시리즈가 가장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매년 200이닝을 던지면 성공이다”라는 그에게 최대한 선수생활을 오래 지속하고 싶은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가족을 중시하는 미국 선수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꽤 많기 때문이다. 디키는 “그럴 것이다”라면서도 “하지만 나는 아이들을 둔 가장이다. 야구를 오래 하고 싶은 것은 확실하지만 가족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마무리했다. 저니맨은 가족에 진 빚이 많다. 그 빚을 야구로 갚게 할 것인지, 아니면 함께하는 시간으로 갚게 할 것인지는 그의 가족이 결정할 일이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