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도 보스턴처럼 온 시민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마라톤 축제가 있어야 합니다. 이번 마라톤이 그 역할을 해야지요."

1950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의 영웅 함기용(86·대한육상경기연맹 고문) 선생은 '통일과 나눔 서울하프마라톤'을 앞두고 새로운 마라톤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함 선생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태극기를 달고 국제 대회에서 우승한 첫 한국인이다.

함기용 선생은 6·25전쟁이 나기 두 달 전 열린 보스턴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그는 전쟁 통에 당시 메달을 잃어버렸지만 통일에 대한 열망은 더 간절해졌다고 한다. 함 선생은“통일을 염원하는 자리에 함께하고 싶다”며‘통일과 나눔 서울하프마라톤’10㎞ 코스 시상자로 나서기로 했다. 22일 경기 성남 분당구 돌마공원 인근에서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함 선생의 모습.

그는 24일 '통일과 나눔 서울하프마라톤'의 시상자로 나선다.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리는 10㎞ 코스 시상식에 참석해 우수한 기록을 낸 남녀 12명에게 트로피와 상장을 전달할 예정이다.

함 선생은 시상을 맡으며 중학생 때인 1947년 '제1회 손기정 세계 제패 기념 조선일보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5등을 차지한 기억을 떠올렸다고 했다. 함 선생의 고향은 춘천인데 서울에서 포장도로를 달리던 느낌이 각별했다고 한다. 당시 대회는 서울 태평로~서울역~노량진~오류동을 왕복하는 코스에서 열렸다. 함기용 선생은 "당시는 8월이라 비가 많이 내렸다"면서도 "한강을 건너고 서울 시내 곳곳을 달리는 게 참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한국, 1950년 보스턴 마라톤 1~3위 석권 - 1950년 미국 보스턴 마라톤에서 함기용·송길윤·최윤칠(뒷줄 왼쪽부터) 선수가 나란히 1~3위를 차지한 뒤 월계관을 쓴 모습. 가운데 앉은 사람은 1947년 같은 대회에서 우승한 서윤복 선수.

이번 서울하프마라톤 대회에서도 시민들은 서울 시내를 달리고 한강 다리를 건너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함 선생은 "이번 마라톤 참가자들도 이런 마라톤의 행복을 충분히 느끼면 좋겠다"고 했다.

1950년 당시 한국 마라톤의 보스턴 제패는 세계적인 사건이었다. 동양에서 온 신생 독립국의 마라토너들이 세계 최고 권위의 대회에서 1~3등을 석권한 것이다. 2등과 3등은 고(故) 송길윤 선생과 최윤칠 선생이었다. 당시 감독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고(故) 손기정 선생이었다.

20세였던 함 선생은 보스턴에서 2시간32분39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다. 미 언론은 함 선생이 막판에 걷다 뛰다 하면서도 우승했다며 그를 '워킹 챔피언'이라고 불렀다.

"막판에 혼자 달리는데, 보스턴 시민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나와서 함성을 질렀어요. 알지도 못하는 작은 나라의 선수들을 그렇게 응원했던 거죠. 마라톤을 축제로 즐기는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함 선생에게 통일은 특별하다. 그는 보스턴 마라톤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지금 한반도는 남북이 갈라져 있어 이북 동포들은 내가 이렇게 우승한 사실도 모른다.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은데 참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심장인 서울의 도심을 달리는‘통일과 나눔 서울하프마라톤’대회가 새롭게 탄생했다. 24일 오전 8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마라토너들의 질주가 시작된다. 지난해 10월 춘천마라톤에 참가한 선수들이 출발선을 지나 힘차게 달리는 모습.

함 선생은 "마라톤이 당장 남북통일을 이루게 할 수는 없겠지만, 마라톤을 통해 시민들이 통일에 대한 희망을 함께 공유하면 좋겠다"며 "이번 서울하프마라톤이 바로 그런 자리라고 생각해 선뜻 시상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함 선생의 선수 생활은 짧았다. 보스턴 마라톤 두 달 뒤 터진 6·25전쟁 때문이었다. 보스턴 마라톤 메달도 전쟁 통에 잃었다. 지금 그가 갖고 있는 메달은 나중에 보스턴 측에서 새로 제작해 건넨 것이다.

함 선생은 1985년 은행 지점장으로 퇴직한 뒤 20여년간 대한육상경기연맹 임원으로 마라톤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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