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아이콘. 고맙습니다, 24번." 12일(이하 한국 시각) NBA(미 프로농구) 오클라호마 시티 선더와 LA 레이커스의 경기 시작 전. 한 남자를 위한 헌정 영상이 나오자 오클라호마 시티 홈팬들이 환호했다. 영상의 주인공은 원정팀 레이커스의 24번 코비 브라이언트(38)였다. 그는 14일 유타 재즈와의 홈경기를 끝으로 20년간 뛴 코트를 떠난다. 오클라호마 시티의 케빈 듀란트(28)는 "그는 우리 세대의 마이클 조던이었다"는 헌사를 전했다.
지금 미국엔 '코비 신드롬'이 불고 있다. 지난해 11월 은퇴를 발표했던 코비와의 작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골프의 타이거 우즈, 테니스 세리나 윌리엄스, 축구 리오넬 메시 등 수많은 수퍼스타가 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지난해 12월 코비를 백악관으로 초대했다.
코비는 2003년 마이클 조던의 은퇴 이후 팬들의 허전함을 채워준 선수였다. 조던처럼 슈팅 가드였던 코비는 조던처럼 화려한 기술로 코트를 휘저었다. 그의 별명 '블랙 맘바(Black Mamba·검은 독사)'는 공중에서 상대를 속일 때 마치 '뱀이 몸을 뒤트는 것 같다'는 뜻에서 붙었다. 코비는 조던처럼 경기 중 혀를 내밀었고, 유니폼을 입에 물었다. "일부러 따라 하는 것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는 조던이 최고라고 인정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했다. 조던은 "전성기의 나도 코비를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다"며 "그는 내 기술을 다 훔칠 수 있는 도둑"이라고 했다. 그는 2014년 12월 마이클 조던의 통산 득점 3만2292점을 넘어섰다. 현재 3만3570점인 코비의 기록은 NBA 역대 통산 득점 3위에 해당한다. 코비는 "나는 조던을 훔쳤지만, 지금 세대는 나를 훔치고 있다"고 했다.
그가 조던을 넘어선 건 아니었다. 조던은 강렬한 카리스마로 스카티 피펜, 데니스 로드먼 등 스타 집단 시카고 불스를 하나로 묶었지만 코비는 과거 팀 동료 샤킬 오닐과 불화를 일으키는 등 잡음을 빚기도 했다. '동료들을 돕기보다 혼자 슛만 쏘려고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사랑을 받은 건 지독할 만큼의 노력과 집념 때문이다. 2010년엔 손가락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안고도 경기를 계속 뛰며 레이커스를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1500개의 슛을 던지는 연습벌레이기도 했다. 코비는 2006~2007시즌을 앞두고 NBA 데뷔 때 달았던 8번 대신 24번으로 등번호를 바꾸면서 "하루 24시간, 공격제한시간 24초, 매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더 많은 연봉을 찾아 팀을 수시로 옮기는 프로 세계에서 보기 드문 '원 클럽 맨(One Club Man)'이었고, 팬들은 이를 높이 평가했다. 코비는 1996년 레이커스 입단 이후 20년을 한 팀에서만 뛰었다. 2000~2002년 샤킬 오닐과 함께 3연패 위업을 달성한 이후 찾아온 팀의 부진 속에서도 그는 레이커스를 지켰다. 그는 고군분투하며 레이커스를 2009·2010년 2연속 챔피언으로 이끌어 다시 정상을 밟았다. 미국인들은 '원 클럽 맨'이었던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 데릭 지터를 보는 것처럼 코비를 본다.
레이커스는 지금 서부 콘퍼런스 꼴찌다. 팀이 코비에게 높은 연봉을 지급하느라 세대교체에 실패했다는 말도 있고, 그의 화려한 마지막을 위해 어린 선수들이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코비를 보는 시선은 각양각색이지만 팬들은 한 세대를 풍미한 스타와의 작별을 아쉬워하고 있다.
무명 NBA 선수의 아들로 태어나, 5세 때 레이커스의 선수를 꿈꿨던 소년. 마이클 조던의 경기를 TV로 보면서 여자친구와 데이트했던 고등학생은 이제 코트를 떠난다. 그가 은퇴 발표 때 공개한 시 '농구에게'는 이렇게 끝난다. "내가 (코트를) 떠나도 나는 언제나 아버지의 양말을 신고 방구석 쓰레기통을 향해 공을 던지는 다섯 살 어린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