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억원이 걸린 소송인 만큼 김용담(세종)·김지형(지평)·고현철(태평양)·손지열(김앤장) 변호사 등 대법관 출신이 총출동, 일류 로펌의 명예를 걸고 사투를 벌였다.”
화우, 세종, 지평 등 연합군과 김앤장, 태평양 연합군이 2010년 현대건설 인수전 당시 현대그룹이 채권단에 낸 이행보증금 2755억원 반환 여부를 결정하는 소송에서 맞붙었다.
화우, 세종, 지평은 현대그룹을, 김앤장, 태평양은 외환은행 등 채권단의 법률 대리를 맡았다.
승패는 지난 24일 갈렸다. 현대그룹을 대리한 화우, 세종, 지평 연합군의 압승이었다. 김앤장과 태평양은 1심부터 20명의 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했지만 줄곧 끌려 다니다 졌다.
현대그룹이 변호사 27명, 채권단이 변호사 22명을 투입, 47명의 호화 변호인단이 맞붙은 보기 드문 물량전·백병전이었다.
재판에서 이긴 현대그룹은 이행보증금 2755억원 가운데 2066억여원을 돌려 받게 됐다. 유동성 위기 몰린 현대그룹에겐 가뭄 속 단비와 같은 희소식이다.
◆ 현대건설 인수 실패한 현대그룹 “이행 보증금 2755억원 돌려달라” vs 채권단 “못 준다”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그룹은 2010년 11월 15일 현대건설 입찰에 참여했다.
2010년 11월 16일 매각 주간사는 5조 5100억원을 써낸 현대그룹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5조 1000억원을 쓴 현대자동차그룹은 예비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낙찰에 실패한 현대자동차그룹은 “자산이 33억원 밖에 안되는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이 1조원이 넘는 자금을 보유할 수 있겠느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현대그룹이 입찰 당시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이 전략적 투자자로서 입찰금액(5조 5100억원) 중 ‘자기 자금’ 1조 752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적시하고 프랑스 나티시스(Natixis) 은행이 발행한 예금잔고증명서를 제출한 대목을 문제 삼았다.
채권단은 이의 제기를 받아들여 현대그룹에게 인수 자금 출처 해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해명하지 못했다. 채권단은 현대그룹과 맺은 양해각서를 해지하고 현대자동차그룹을 현대건설 인수자로 선정했다. 현정은 회장의 뼈 아픈 패배였다.
싸움은 현대건설 인수전 이후에도 계속됐다.
현대건설 인수에 실패한 현대그룹은 이행보증금 2755억원을 현대건설 채권단에 돌려 달라고 했으나 채권단이 “못주겠다”고 거부하자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현대그룹이 낸 소송에 맞서 외환은행 등 채권단은 1심부터 김앤장 변호사 10명, 태평양 변호사 10명으로 구성된 대군으로 맞섰다.
김앤장은 한상호(66·사법연수원 6기), 김수형(60·〃11기), 전원열(50·〃19기), 원유석(55·〃15기), 김유진(48·〃22기), 최건호(43·〃26기) 등 법관 출신 변호사 8명, 신필종(53·〃17기) 등 금융전문 변호사 2명을 투입했다.
한상호 변호사는 법원행정처 기획담당관, 의정부지원장 등을 지냈고, 김수형 변호사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부산고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원유석 변호사는 수원지법 안산지원장, 특허법원과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거물 변호사다.
당시 김앤장 변호사였던 신필종 변호사(작년 10월 개업)는 1990~2000년대 '현대·기아차그룹 비자금 의혹 사건',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 발행 의혹 사건' 등을 맡았다.
태평양의 변호인단 진용도 화려했다. 1심부터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투입했다. 고현철(69·사법시험 10회) 전 대법관, 한위수(59·〃12기) 전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 전관 출신 변호사와 금융전문가 서동우(52·〃16기) 변호사 등 변호사 10명을 투입했다.
고현철 고문은 서울행정법원장·서울지법원장, 대법관, 중앙선거관리위원장(2006~2009년)을 지냈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인 한위수 변호사는 2015년 1월 대법관 후보 3명에 포함되기도 했다.
1990년 태평양에 입사한 서동우 변호사는 ▲현대건설 지분 매각 자문 및 소송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 ▲하이닉스 반도체 주식매각 ▲유안타증권의 동양증권 인수 자문을 했다.
◆ ‘양해각서 해지시 부제소 특약’의 효력, 양해각서 해지 적법성이 쟁점
양해각서가 해지되더라도 소송을 내지 않기로 한 ‘부제소 특약’의 효력, 양해각서 해지의 적법성이 재판의 핵심 쟁점이었다.
채권단을 대리한 김앤장과 태평양은 양해각서에 적시된 ‘부제소 특약’을 근거로 “이행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부제소 특약은 ‘현대그룹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등 주식 매각 절차 결과에 승복하며 어떠한 이의나 재판상 청구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김앤장과 태평양은 또 “현대그룹이 자금조달 증빙을 명확하게 하지 않아 양해각서가 해지됐다. 해지가 적법하니 이행보증금을 반납할 수 없다”고 버텼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재판장 윤종구)는 2013년 7월 25일 “양해각서 해지는 적법하지만 ‘부제소 특약’은 인정할 수 없다”며 “채권단은 이행보증금 2755억원 중 현대상선에 2066억여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양해각서 해지는 현대그룹의 책임도 일부 있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현대 그룹에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사적 자치의 원칙에서 볼 때 부제소 특약을 한 당사자는 특약의 구속을 받아야 하나 부제소 특약을 무제한 허용하면 헌법상 ‘재판을 받을 권리’가 사실상 박탈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2심에서 김앤장은 원유석, 최건호 변호사만 두고 이혜광(57·〃14기) 변호사를 투입했다. 태평양도 서동우 변호사 등 3명으로 변호인단을 대폭 줄였다.
김앤장과 태평양은 “매각 교섭이 결렬된 책임은 현대그룹에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고등법원 민사16부(재판방 최상열)는 2013년 12월 5일 김앤장과 태평양의 항소를 기각했다.
김앤장은 대법원 재판을 앞두고 대법관 출신 손지열(69·사법시험 9회) 변호사를 투입했다. 태평양은 서동우 변호사 등 3명의 2심 변호인단에 노영보(62·〃10기) 변호사를 추가 투입했다.
노영보 변호사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기획조정심의관,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그러나 지난 24일 “현대그룹에게 2066억원을 돌려주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현대그룹의 1심 구원투수는 화우와 민병훈 변호사였다.
화우는 이주흥(64·〃6기) 전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중심으로 박상훈(54·〃16기), 유승남(51·〃18기) 전 부장판사 등 변호사 10명을 투입했다.
민병훈 변호사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정보화담당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이주흥 변호사는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법원장을 역임했다.
박상훈 변호사는 서울고법·서울행정법원 판사를 지냈고, 유승남 변호사는 의정부지법·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를 지냈다.
화우와 민 변호사는 “양해 각서에 현대그룹이 예치한 이행보증금이 ‘위약금’으로서 확정적으로 귀속된다고 규정돼 있지만 매각 주체들의 문제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다른 손해배상 수단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화우 등은 “‘부제소 특약’은 일방적인 계약이다.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현대그룹의 책임이 일부 인정된다. 외환은행은 이행보증금 2755억원에서 정당한 손해배상예정액인 688억여원을 뺀 2066억여원을 현대그룹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현대그룹에선 2심에 민병훈 변호사만 투입했다.
민 변호사는 “채권단은 현대그룹의 자료가 불확실한 것을 알고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 이행보증금을 납입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현대그룹이 의무를 위반, 양해각서가 해지됐지만 현대그룹이 낸 이행보증금을 아예 돌려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상고심에선 1심부터 참여한 민 변호사와 세종, 지평이 함께 싸웠다.
세종은 김용담(69·〃1기) 전 대법관, 윤재윤(63·〃11기), 김두식(59·〃12기), 오종한(51·〃18기) 등 변호사 9명을 상고심에 투입했다.
김용담 변호사는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차장, 대법관을 지냈고 윤재윤 변호사는 법원행정처 조사심의관, 부산·서울고법 부장판사, 춘천지법 법원장을 지낸 거물 변호사다.
지평도 김지형(58·〃11기) 전 대법관 등 변호사 4명을 투입했다. 김지형 변호사는 서울지법 부장판사, 대법원장 비서실장, 대법관을 지냈다.
상고심에서 이변은 없었다.
대법원은 “현대그룹이 미흡한 자료를 낸 것은 양해각서 해지 사유가 된다. 하지만 인수 자금 의혹은 경쟁적인 인수전에서 비롯된 만큼 현대그룹에게 모든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2000억원을 놓고 변호사 47명이 벌인 소송전은 현대그룹의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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