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 세종대 교수·기술윤리

[[키워드 정보] 인공지능(AI)란 무엇인가?]

인간 이세돌과 컴퓨터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이 끝났다. 대결 초반 인간의 패배는 충격을 주었지만 이제 냉정하게 대결의 의미를 복기할 필요가 있다.

처음 이세돌은 왜 그렇게 무기력해 보였을까. 무지와 선입견 탓이 아니었을까. 사실 이번 대결에서 알파고의 승리 가능성은 우리의 예상보다 컸다. 이미 1997년에 IBM의 수퍼컴퓨터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꺾었다. 1초에 2억 가지 수를 읽는 경이로운 연산 능력과 지난 100년간의 체스 기보를 모두 저장하고 있는 엄청난 기억 용량 덕분이었다. 알파고도 인간보다 압도적인 연산 속도를 자랑하며, 게다가 전문가 시스템인 딥블루와 달리 심층신경망 기술로 무장해 학습 능력까지 갖췄다.

바둑은 수를 더 잘 계산하는 쪽이 이긴다. 딥블루가 카스파로프를 꺾었을 때, 곧 바둑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애써 무시했다. 그래도 바둑에서는 직관과 영감으로 무장한 인간을 인공지능이 쉽게 따라오지 못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직관과 영감은 가능한 모든 수를 계산할 수 없는 인간의 뇌가 만들어낸 방식이다. 컴퓨터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양의 계산을 해낼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계산이 직관보다 정확하다.

그릇된 믿음이 이번 대결에서 불공정해 보이는 요소를 용인하게 했다. 인간과 컴퓨터에 똑같이 2시간이라는 시간 제한을 둠으로써 바둑 대국이 연산 대결이 된 느낌이다. 연산은 컴퓨터가 인간보다 잘한다. 그러니까 암산하지 않고 계산기를 쓰는 것이다.

감정 없이 대국하는 상대에게서 이세돌은 괴물을 느꼈을 것이다. 역사적 사례도 있다. 18세기 유럽에서 체스 두는 자동 인형이 나타나 내로라하는 고수들을 꺾었다. 인형 속에 사람이 숨은 사기극으로 들통났지만 기계와의 대결이라 믿은 상대방은 당혹감에 빠졌었다. 딥블루와 대결한 카스파로프도 감정적 반응과 실체가 없는 상대와 맞붙는 데서 오는 공포감을 토로했다. 이세돌도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토로했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가장 큰 차이는 감정과 의지에 있다. 처음 이세돌은 감정 때문에 졌다. 하지만 그 감정이 승리에 대한 열망을 만들어냈고, 인간으로서의 책임감과 자존심이 의지를 불러일으켰다. 괴물 앞에 동요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긴 하지만, 또한 인간은 놀라운 적응력을 지니고 있다. 경험을 통한 학습과 적응은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이 특별히 재능을 보이는 영역이다. 낯섦에서 비롯하는 공포가 사라지고 평정심이 찾아오면, 괴물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알파고는 인간이 만든 놀라운 바둑 프로그램일 뿐이다.

이번에 우리는 인간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결이 아니라, 인간 이세돌이 자기 자신과 벌인 싸움을 보았다. 그리고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도구의 위력도 보았다. 또 하나 발견한 것은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우리의 무지와 편견이다.

이제 우리에게 커다란 화두가 주어졌다. 인공지능의 막강한 능력을 어떻게 다뤄야 하나? 장차 인공지능의 광범위한 적용이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같이 고민해야 할 때이다. 물론 인공지능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두려운 것은 인공지능을 이용할 우리 인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