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강혜원(28)씨는 지난해 말 중국 여행 때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4명의 중국인 일행과 일정을 같이하며 문화 충격을 경험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매일 머리를 감은 자신과 달리 중국인 일행들은 2~3일에 한 번 정도만 머리를 감았다. 강씨는 "오히려 나에게 '샴푸를 자주 하면 두피에 안 좋다'고 말해 놀랐다"고 했다.
#.7년 전 한국에 온 프랑스인 엘자 퀴네(29)씨는 드라이 샴푸(물 없이 샴푸 효과를 내는 제품)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그는 "모발에 기름이 잘 끼는 편이라 드라이 샴푸를 출근 전에 뿌려주는 게 습관이었다"며 "한국에서는 드라이 샴푸를 파는 곳을 찾기가 힘들어서 프랑스로 출장 가는 동료들로부터 드라이 샴푸를 공수받아 사용했다"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일 머리를 감는 것에 익숙하다. 두피에 기름이 끼면 샴푸로 씻어낸다. 이 때문에 유럽·미국에서는 흔하게 쓰이는 드라이 샴푸가 우리나라에선 최근에야 등장했다. 샴푸 대용이라기보다는 주로 '늦잠 자서 머리 감을 시간이 없을 때' 같은 비상상황용이다. 매일 쓰는 용도가 아니다보니 판매량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바티스트라는 영국 브랜드가 처음 국내에서 제품을 출시했고, 최근에는 아베다·미장셴·르네휘테르 등에서 잇달아 드라이 샴푸를 내놓으며 시장에 대한 기대감이 생겨나고 있다. 뷰티 유통채널 올리브영의 임예원 대리는 "드라이 샴푸를 처음으로 개발한 프랑스 브랜드 클로란(Klorane)도 올 3월 한국에 진출했다"며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액이 50% 느는 등 드라이 샴푸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머리 매일 감는 나라 드물어
국민들이 머리를 매일 감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 세계 소비재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가 16개국을 조사한 결과 머리 감는 횟수 평균은 주당 3.5회였다. 미국(4회)·일본(4회)·멕시코(6회) 등이 평균 이상이고 중국(2.5회)·호주(3회)·프랑스(2.5회) 등이 평균 이하였다. 로로 캴벨 클로란 본사 마케팅 디렉터는 "프랑스는 물에 석회질이 섞여 있어 머리를 자주 감으면 머릿결이 상한다는 인식이 강하고 호주는 시간별 단수를 하는 지역이 많아 상대적으로 머리 감는 횟수가 적다"고 했다.
최근에는 환경과 두피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노푸족'까지 등장했다. '노푸'는 '노 샴푸'의 줄임말로 샴푸 없이 물로만 머리를 헹구는 것을 뜻한다. 미국 영화배우 기네스 펠트로·조니 뎁 등이 노푸족으로 알려져 있다.
30~4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목욕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1993년 9월 6일 동아일보는 '아침샤워―하루 세 번 이닦기는 기본, 남성 청결 신드롬 확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그 당시만 해도 매일 아침 샤워하는 게 신드롬이라고 부를 만한 현상이었던 셈이다. 한진섭 남부대 향장미용학과 교수는 "몇 번 머리를 감는 게 두피에 좋은지 여부는 사람마다 다르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매일 머리를 감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건 의학적인 근거가 아니라 일종의 문화적 습관인 셈"이라고 했다.
"스타일링 제품으로 팔겠다"
지난 1월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클로란 50주년 행사장'에서 드라이 샴푸를 직접 써봤다. 오후 시간대라 기름기가 끼어 있던 머리카락이 다시 보송보송해졌다. 클로란 홍보담당자 마르틴 뷰토는 "한국에 출시되는 제품은 어두운 모발을 위한 제품으로 나온다"고 했다.
드라이 샴푸의 주 성분은 쌀전분·옥수수 가루·실리카 등이다. 이 성분들이 모발의 유분기를 흡착해 볼륨감을 되살려 준다. 이 때문에 기본적인 기능은 샴푸지만 볼륨감을 주는 스타일링 제품으로 쓰이기도 한다. 샤넬 디자이너인 카를 라거펠트가 매일 드라이 샴푸를 이용해 머리를 스타일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클로란 브랜드를 출시한 '피에르파브르 더모코스메틱'의 이문영 차장은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 차이 때문에 '청결 기능'보다는 드라이 샴푸의 2차 기능인 스타일링 제품으로 홍보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