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전교어린이회의라는 게 있었다. 5·6학년 반장들이 (금요일이었던가?) 방과 후 모여 다음 주 주간 교훈(敎訓)을 정하는 자리였는데 첫 시간부터 속이 틀어졌다. 회의를 주재할 의장을 뽑아야 하는데 다들 처음 보는 처지라 누가 적합한지 알 턱이 없었다. 그래서 6학년 1반 반장이 의장을 맡는 것이 관례였다. 나는 그 반 반장이었다. 그러나 의장 자리는 다른 아이에게 돌아갔다. 당시 우리 어머니는 학교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고 그 아이 어머니는 아예 학교에 붙어살아 남들이 선생님이나 교직원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내가 처음으로 계급적 사고를 하게 만든 사건이다.
세상은 왜 불공평한가, 왜 어떤 인간은 특혜를 받고 어떤 인간은 기회를 박탈당하는가, 뭐 이런 철학적 사유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꼬박꼬박 나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자가 뭔가를 결심하거나 행동으로 옮기는 건 대부분 여자 때문이다. 정말 예쁜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을 보려고 길어지면 세 시간씩이나 하는 회의를 꾹 참고 앉아 있었다. 새록새록 계급적 분노가 되살아났다. 의장을 맡았더라면 그 여학생 얼굴을 내내 정면으로 볼 수 있었을 텐데. 몇 시간씩 곁눈질하다 보니 회의 마치고 집에 올 때면 장시간 한쪽으로 고정되었던 시선 때문에 안구가 굳어 물체가 둘로 보였다.
두어 달쯤 지났을까. 회의를 관장하는 선생님이 대뜸 나를 지목했다. "거기 사팔뜨기처럼 옆만 보고 있는 놈, 첫날부터 오늘까지 단 한마디도 안 하셨는데 부끄럽지도 않으냐?" 나에게 부끄러움을 말하기 전에 이 시스템의 부끄러움에 대해 먼저 말씀하시죠, 하고 말하고 싶었다(실행에 옮기는 용기가 생긴 후 내 인생은 사랑의 매 풍년이 들었다). 눈알 팔십여 개가 일제히 나를 향했다. 그 눈알 중에는 그토록 정면으로 보고 싶었던 그녀 것도 있었다. 아 저렇게 까맣고 단정했구나. 한가하게 인상비평이나 하고 있을 계제가 아니었다. 뭔가 정말이지 멋진 의견을 던져, 그간의 침묵은 너희의 유치에 대한 나의 답변이다 하고 통쾌하게 질러줘야 하는데 그런 게 초등학생 머릿속에 바로 떠오를 리가 없었다.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가 아니라 초초(秒秒)가 여일(如日)이었다. 겨우 내놓은 의견이 '복도의 휴지를 줍자'였다. 휴지를 주워 깨끗한 학교를 만들자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별다른 의견이 나오지 않아 다음 주 교훈 주인공은 내가 될 상황에서 선생이 딴죽을 걸었다. 나를 앞으로 나오라 하더니 세워놓은 채로 그 의견이 왜 부적당한지를 설명했다. 너무 구체적이고 폭이 좁다는 게 이유였다. 그렇게 나는 한 시간 내내 비난과 질타 속에 서 있었다. 그녀의 까만 눈은 총알이 되어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그날 채택된 교훈은 '아름다운 사람이 되자'였다. 대체 어떻게 아름다운 사람이 되라는 말일까. 그리고 일주일만 아름다우면 그다음부터는 안 아름다워도 좋다는 얘기인가. 딸아이 입학식에 갔다가 큼지막하게 붙어있는 교훈을 봤다. 좋은 말은 다 모아 놓았는데도 이상하게 와닿지 않았다. 왜 학교 교훈은 다 저렇게 획일적으로 추상명사 일색일까. 그다음 주 교훈은 '성실한 사람이 되자'였다. 어쩌면 '착한 사람이 되자'였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