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빚 4억5000만원을 갚고 싶지만 다 갚을 형편은 안 된다며 법원에 '개인회생' 신청을 냈다. 파트타임 학원강사로 한달에 200만원을 벌어 가족 생계비로 155만원이 나가고 수중에 남는 건 45만원뿐이라고 딱한 사정을 호소했다.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매월 45만원씩 5년 간 2700만원만 갚으면 나머지 4억2300만원은 안 갚아도 되도록 선처해줬다. 하지만 A씨가 실제로는 IT기업에 다니며 월 평균 540만원 넘게 벌어왔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법원은 빚 탕감 결정을 취소해 버렸다.

개인회생은 빚을 갚겠다는 의지는 분명하지만 소득이 충분치 않은 사람들이 최장 5년 간 자신의 능력 범위 안에서 성실하게 일부를 갚으면 나머지 빚은 면제해주는 제도다. 가계부채 증대에 따른 파산·신용불량 양산(量産)을 막으면서 도덕적 해이는 최소화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A씨처럼 자신의 소득을 지나치게 줄여 신고해 고의로 수억원까지 빚을 덜 갚으려는 시도가 속출하면서 개인회생 제도의 근본 취지가 흔들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작년 8월 개인회생 관련 비리의심 사례를 유형별로 분석했다. 전체 412건 중 '허위 자료 제출'이 176건이었고 이 가운데 '소득 관련 자료 허위 제출'이 120건으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일반적으로 월 소득에서 최저 생계비의 1.5배에 해당하는 액수를 뺀 나머지로 빚을 갚도록 하는데 채무자들이 소득을 고의로 축소해 법원에 거짓 신고하고 있다는 얘기다.

B씨는 개인회생을 신청하면서 작년 1월부터 서울의 한 식당에서 매월 120만원을 받고 일한다고 신고했다. 법원이 급여 통장 사본을 제출하라고 하자, B씨는 월급을 현금으로 받아 통장이 없다고 했다. 법원이 B씨의 통화 기록을 확인해 봤더니 그가 식당 인근에서 통화한 기록이 거의 없었다. 알고보니 식당 주인이 B씨의 친구였다.

법원은 B씨가 소득이 적어 보이도록 하기 위해 이 식당에서 일하는 것처럼 꾸미고 있는 것으로 판단해 그의 개인회생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개인회생 전문 변호사는 "실제로는 자영업을 하며 고소득을 올리면서 빚을 안 갚으려고 저소득 월급쟁이 행세를 하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월급쟁이 중에는 성과급을 줄여 전체 소득이 적게 보이도록 하려는 경우가 있다. 한 증권회사 영업직 직원 C씨는 영업실적에 따라 3개월마다 급여가 재산정 되는 점을 이용, 개인회생 신청 직전에 의도적으로 영업실적을 떨어뜨려 소득을 낮췄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개인회생을 신청하면서 월소득을 200만~300만원씩 줄여 신고해 수억원대의 빚을 덜 갚으려는 것은 사실상 범죄 행위"라며 "이런 사실이 적발될 경우 개인회생을 할 수 없게 되고 파산·신용불량 등으로 이어져 사회·경제적으로 여러가지 불이익과 제약을 받게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