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 막히는 퇴근길에 뒤쪽 어디선가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반대편 차선으로 응급차량이 지나가지 않았으니 분명히 내 쪽으로 오는 것이었다. 앞차들이 움직이지 않아 마음이 급해졌다. 도로 양쪽 끝 차로 길가나 중앙선 쪽으로 차를 붙이면 된다. 하필 3차선 도로 가운데 차로에 있었기에 백미러로 후방을 살피면서 어느 쪽 차선으로 차를 붙여야 할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런데 소리만 요란할 뿐 좀처럼 백미러에 응급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괜히 마음이 불편해졌다.
소방차와 경찰차, 구급차 사이렌 소리는 각각 다르다. 소방차는 "왱~"하고 길게 소리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면서 저음 경음기를 누르고 경찰차는 소방차 소리에 "삐비비빅"하는 소리가 섞여 있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는 "삐뽀삐뽀"로 표현할 수 있다. 약간 방정맞게 들리기도 한다. 사이렌 소리는 차내에 설치된 기계에서 스위치를 조작해 바꿀 수 있다고 한다. 큰불이라도 나는 경우 이 세 가지 사이렌 소리를 세트로 들을 수 있다. 내 뒤에서 들려왔던 소리는 삐뽀삐뽀였으므로 구급차임에 틀림없었다.
전공의 시절 주요 업무 중 응급실 환자 진료가 있었다. 지금은 응급의학과가 응급실에 상주하고 있어 1차 처치가 끝난 환자들을 보지만 당시엔 각 과 전공의들이 직접 응급실 환자를 진료했다. 응급실 당직이지만 병동 일이 끝나지 않아 병동에서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에 우리 병원으로 구급차가 "삐뽀삐뽀" 하면서 들어오면 그 소리가 "태호태호"로 들려(내 이름이 태호다) 나도 모르게 심박수가 상승했다. 하던 일을 중단하고 응급실로 뛰어가면서 '제발 내과 중환자가 아니었으면' 하고 속으로 빌기도 했다. 내과 환자인데 제 발로 걸어오는 환자라면 내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졌다(물론 이런 환자가 순식간에 중환자로 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침상에 실려 들어오는 환자가 어린이거나 피투성이라면, 환자나 다른 과 전공의들에겐 미안하지만, 내 담당이 아니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응급 환자가 내과 환자가 아니기에 병동으로 올라가려다가 생체 징후가 불안정하다는 소리를 듣고 다른 과 전공의를 제치고 다시 달라붙었던 기억도 난다.
작은 병원으로 파견 나가 있을 때 환자를 상급 병원으로 이송하려고 구급차에 동승하기도 했다. 동네 병원을 연 뒤에도 불시에 찾아오는 응급 환자와 함께 구급차를 타보면 도로 위의 각박함을 새삼 느낀다. 길이 막혀 있더라도 약간씩만 차를 비켜주면 구급차가 지나갈 공간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길을 비켜주기는커녕 빈 공간에 차 머리를 들이대는 운전자를 보면 육두문자가 저절로 나온다.
마음이 불편한 수십 초가 흐른 후에야 뒤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 역시 어느 쪽으로 차를 비켜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다행히 내 앞의 차들도 조금씩 움직여 길을 터주었다. 그 차들 사이를 뚫고 구급차가 지나갔다. 멀어져가는 구급차를 보면서 그 속에 타고 있을 환자와 보호자 그리고 구급대원에게 아무 일 없기를 기도했다. 길이 막힐 시간이나 장소가 아닌데 막히면 대개 교통사고가 원인이다. 큰 사고보다는 약간의 접촉사고 때문에 길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사고 난 차들을 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구급차 때문에 차를 조금씩 움직여야 한다고 화를 낼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나의 작은 수고로 다른 생명을 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구급차에 길을 터주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선진국의 모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