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포항에서 열린 포항 스틸러스와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약칭 우라와 레즈)의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H조 2차전을 앞두고 포항 구단 관계자들은 잔뜩 긴장했다. 작년 J1리그(일본 프로축구 1부 리그)에서 평균 관중 1위(3만8745명)를 기록한 최고 인기 구단 우라와 레즈 원정 팬들의 극성맞은 응원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우라와 보이스(Urawa Boys)'라 불리는 우라와 레즈 서포터스는 조직적인 응원으로 유명하다. 홈구장인 사이타마 스타디움에선 예술에 가까운 대형 카드섹션이 펼쳐진다. 관중석에 넘실거리는 빨간 팀 머플러의 물결도 볼거리다. 대규모 원정 응원도 자주 나오는데, 2007년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당시엔 원정팬 4000여명이 전주와 성남을 찾아 마치 홈구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도 멀리 포항까지 찾아온 500여 우라와 원정 팬이 붉은색 한자로 '혈전(血戰)'이라 쓴 현수막과 일장기를 내걸고 세차게 응원했다.

귀신 대신 日응원 잡아라 - 2일 포항 스틸야드는 해병대 장병 1000여명의 우렁찬 함성으로 가득 찼다. 포항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해병대의 장병들은 힘찬 군가와 박수로 포항 선수들을 격려했다.

포항 구단은 해병대에 SOS를 쳤다. 우라와 팬들의 기를 죽이기 위한 묘안이었다. 포항 해병대 1사단 1000여명은 당초 2층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관전할 예정이었지만 구단의 요청으로 우라와 팬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 축구 관례상 양팀 응원단은 서로 멀리 떨어져 앉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날 우라와 팬들이 응원가를 부르자 해병대 장병들도 '팔각모 사나이' 등의 군가를 부르면서 맞불을 놓았다. 일사불란한 해병대 박수에 우라와의 응원 리듬이 끊기기도 했다.

일부 우라와 팬이 한국 쪽을 향해 손가락 욕설을 하며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결국 돌출 행동으로 악명이 높은 우라와 팬들은 이날도 비신사적인 행위로 물의를 일으켰다. 무실점 선방으로 1대0 승리를 이끈 포항 골키퍼 신화용은 경기 후 "골대 뒤로 공을 주우러 가는데 일본 팬들이 침을 뱉었다"며 "우라와가 이 정도 수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日우라와 팬 500여명 포항에 원정응원 - 다양한 플래카드를 내걸고 2일 포항전에 임한 우라와 레즈 원정 팬들. 우라와 팬은 열성적인 응원으로 유명하지만 도를 넘는 극우 행동으로 비난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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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와는 특히 극우 성향의 팬 행동이 자주 문제가 된 팀이다. 2013년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AFC 챔피언스리그 전북―우라와전에선 우라와 팬이 일본 군국주의 상징인 욱일기를 흔들어 논란이 됐다. 이듬해엔 우라와의 일부 팬이 경기장 출입구에 'Japanese Only(일본인만 출입 가능)'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건 일이 있었다.

당시 현수막은 우라와에 새로 합류한 재일교포 4세 선수 이충성(일본명 리 다다나리)을 겨냥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이 사건으로 우라와는 무관중 징계 수모를 당했다.

결국 이날 경기에선 포항이 우라와를 1대0으로 꺾었다. 해병대 1037기로 현역 복무한 포항 수비수 김원일은 경기가 끝나자 해병대 장병 앞으로 달려가 함께 군가를 불렀다. 응원전에선 져 본 적이 없는 우라와 팬들로선 잊고 싶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