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미(美)의 기준이 변하고 있다. 불과 2~30년전이었다면 이른바 '연예인 얼굴'이라고 얘기하기 힘든 밋밋하고 평범해 보이는 얼굴들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대충 걸친 듯한 외투, 눈에 띄지 않는 톤다운된 기본 아이템으로 골라입은 스타일이 거리를 채우고 있다.
얼굴과 패션에서 힘을 뺀 사람들이 따로 힘을 주는 곳은 '몸'이다. 또렷한 인상과 화려한 아이템으로 무장했던 과거와는 달리 그 정성을 몸 속 근육을 키우는데 쏟고 있는 것이다. 얼굴과 패션은 밋밋할 정도로 자연스럽게, 몸속의 진짜 근육은 확실하게. 지금 대한민국가 선호하는 외모상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볼 수 있다. 늘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유행이라지만, 그 양상이 과거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서 흥미롭다.
밋밋한 얼굴
과거 미남·미녀 스타들의 필수 조건은 쌍꺼풀이 그려진 큰 눈으로 대표되는 뚜렷한 이목구비였다. 하지만 최근 주목받는 스타들의 얼굴은 이와 정반대다. 요즘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남녀스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홑꺼풀에 오밀조밀한 눈코입을 가진 얼굴들이 많다. 성형을 하면서까지 크고 또렷한 눈, 오똑하게 솟은 코, 선명한 인상을 추구했던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2015년 말, 2016년이 가장 기대되는 배우로 꼽힌 박소담은 쌍꺼풀이 없는 눈에 작은 눈코입을 가지고 있다. 담백해보이면서 기교를 부리지 않은 얼굴이 맑은 느낌을 준다. 박소담은 주변 사람들이 만날 때마다 성형하지 말라고 당부한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도 "내 눈은 성형으로도 나올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성형 생각은 없다"고 당당히 밝히는 20대 대표 여배우다. 최근 '치즈인더트랩'에서 여대생 캐릭터를 현실적으로 소화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김고은 역시 홑꺼풀의 평범한 얼굴에 속한다. 2011년 영화 '은교'의 주인공 역을 단번에 꿰차면서 그동안 20대 여배우로서는 연기하기 힘든 거친 캐릭터를 연기했다. 어떤 개성 강한 배역을 맡아도 자연스럽게 녹아낼 수 있었던 건 그녀의 외모 덕이 컸다.
시청률이 나날이 오르며 주말 안방을 책임지는 '내 딸 금사월'의 주인공 사월이 '백진희', '육룡이 나르샤'에서 척사광 캐릭터로 분해 깊은 인상을 남긴 한예리 모두 전형적인 미인상과는 거리가 먼 홑꺼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자연스러운 외모가 주는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를 배우 활동에서 잘 발휘하고 있다.
남자 스타들의 외모 역시 장동건, 원빈 등으로 대표되는 조각 미남 부류보다는 어딘가 친숙하고 개성있는 얼굴들이 주목받고 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인기로 2015년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 류준열은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전형적인 미남상은 아니다. 하지만 개성있는 얼굴로 미남 스타 못지 않은 매력을 보여줘 새로운 외모 트렌드를 만들었다.
심심한 패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주인공 덕선의 동생 노을은 덕선에게 말한다. "응 꾸민다고 꾸몄을 때가 제일 별로야" 우스개 소리로 지나간 대사지만 이 말은 2015년과 2016년 패션 트렌드를 한번에 정리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소위 옷 좀 입고 패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절대 패션에 힘을 주거나 과도한 시도를 하지 않는다. 이들은 주로 평범해보이지만 스타일을 놓치지 않는 '놈코어룩'을 추구한다.
'노멀(normal)'과 '코어(core)'의 합성어인 '놈코어룩'은 지극히 평범한 아이템으로 핵심을 뚫어 센스 있는 룩을 완성시킨다는 뜻이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하얀 셔츠, 블랙 슬렉스 팬츠, 무채색의 코트 등으로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멋을 뽐내는 이들이 '놈코어룩'의 대표주자들이다. 놈코어룩은 기본 아이템으로 편안함과 스타일을 동시에 쫓는다는 점에서 담백하고 밋밋한 얼굴을 선호하는 요즘의 외모 트렌드와도 통한다. 베이직한 아이템의 유행은 유니클로 같은 단순한 디자인을 기본으로 하는 브랜드의 매출로도 이어지고 있다.
2016년 편안함을 추구하는 룩으로 '놈코어룩' 말고도 '백수룩'이 있다. '백수룩'은 집에서 입는 일명 '추리닝'과 같은 아이템으로 후줄근함과 편안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2016년에는 흔히 '추리닝'이라고 불리는 트랙슈트가 필수 아이템이 될 전망이다. 지난 1년간 유명 런웨이에서는 대표 '추리닝' 아이템인 스웻셔츠, 후드티 등의 간편복이 대세를 이뤄왔다. 이미 2015년부터 운동을 가거나 잠깐 집 앞 슈퍼를 갈 때의 차림처럼 스웻 셔츠와 운동화를 함께 코디한 패션이 인기를 끌고 있고, 추리닝으로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들이 다양한 관련 상품 출시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힙합 음악의 인기와 운동복 차림의 연예인 파파라치 사진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 '백수룩' 역시 힘을 뺀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하는 것이 핵심이다.
탄탄한 라인
얼굴과 패션에 힘을 뺀 사람들이 따로 '힘을 쏟는 곳'은 바로 몸이다. 현재 사람들의 '몸'에 대한 관심은 2000년대 중반부터 불어닥친 '몸짱' 열풍 과는 조금 다르다. 10년전 유행한 몸짱 열풍이 보여지기 위한 근육에 집중했다면 최근엔 건강을 위한 근육과 라인을 더 중시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근육은 '코어 근육'이다. 코어 근육은 척추를 둘러싼 등·복부·엉덩이·골반 등 몸의 중심 부분에 해당하는 근육이다. 몸의 지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각종 질환과, 노화 현상, 면역과 관련이 깊다.
'건강'을 위한 근육에 대한 관심은 성별과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특히 근육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여성과 장·노년층 사이에서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최근 50이 넘은 나이에 뒤늦게 근육을 키우는 사례들을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도 이런 현상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가수 인순이는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독하게 운동을 해 국내 최대규모의 보디빌딩대회에 참가했다. 일반인 중에서도 주부 오영 씨는 갱년기 우울증을 극복 위해 시작한 운동으로 50세 나이에 보디빌더가 됐고, 흉부외과 의사 김원곤 씨 역시 늦은 나이에 근육으로 새로운 취미를 찾았다.
체중과 다이어트를 미용의 일환으로 생각했던 여성들 사이에서도 다이어트=근육= 건강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근육 키우는 여자'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여성들이 근육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데에는 '여성 스타들의 건강법'과 '운동법'이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방법으로 소개됐기 때문이다. 최근 유승옥, 김정민, 최여진, 예정화 등의 방송인 스타들 중에는 예쁜 얼굴이나 뛰어난 연기력이 아닌 오직 '운동법'이나 '건강을 위한 생활습관'으로 이름을 알린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가장 주목받는 신체부위는 '엉덩이'다. 예전에 여성의 신체와 성적매력을 가리킬 때 '가슴'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2012년부터 대중문화는 건강함과 섹시함의 상징으로 '엉덩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코어 근육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이기도 한 엉덩이 모양은 얼마나 근육이 발달하고, 힙업이 되었느냐에 따라 자기관리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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