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방동 39층 아파트의 거실 통유리를 눈보라가 후려친다. 어른 엄지손톱만 한 눈송이 사이로 설핏 보이는 관악산. 2년 전 이사왔다는 집주인이 말한다. "내 사주는 화(火)의 기운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산 가까이로 집을 옮겼어요. 관악산에는 화가 많거든요."
다혈질이자 충동의 화신이라 자처했던 대중음악 평론가의 믿을 수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다. 주인공은 강헌(54). 그가 펴낸 '명리(命理), 운명을 읽다'(돌베개)가 별 소리 소문 없이 두 달 만에 6쇄 3만부를 돌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해괴했다. 명색이 진보적 지식인임을 자처해왔던 평론가의 느닷없는 사주팔자 놀음이라니.
도발적 질문에도 흥분하지 않고 그는 12년 전 이야기를 꺼냈다. 마흔두 살 되던 2004년 여름, 그는 사무실에서 쓰러졌다. 그나마 휴대폰 두고 퇴근한 대학원 제자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영영 끝일 뻔했다. 응급실 이송, 그리고 대동맥이 70㎝나 찢어진 '대동맥 박리'. 사망률은 98%라고 했다. 담당 집도의는 "가망 없다"며 수술마저 포기했다. 강헌은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하염없이 의식 잃고 누워있다가, 23일 만에 깨어났다고 했다.
"그다음부터 내 삶은 덤이었어요. 인간의 운명 앞에서는 상하좌우가 없더이다. 누구나 아프면 필사적이 돼요."
죽음을 마주하면 누군가는 종교에 귀의하고, 누군가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현실에서 묻는다. 강헌은 후자였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고등학생 시절 기억이 되살아난 것도 그때였다. 역술인이었던 친구 아버지가 봐줬던 사주. 그는 강헌의 서울대 국문과 합격을 예견했고, 마흔두 살의 위기를 경고했으며, 결혼 세 번 하겠다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었다. 이번 책에서도 고백하고 있지만, 쓰러질 당시 그는 두 번째 결혼을 한 상태였고, 이듬해 두 번째 이혼을 한다. 요양을 위해 들어앉았던 해남 두륜산 시골집에서 그는 명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를 평론가로만 기억하는 이들에게, 12년 명리학 공부와 최근 3년간의 강의, 그리고 2000명을 훌쩍 넘는다는 상담 사례는 낯설 것이다.
동양학의 세 줄기는 흔히 사주와 풍수, 한의학이라고들 한다. 동양학자 조용헌은 "한의학은 학문적 시민권을 획득했고, 풍수는 그래도 영주권을 땄지만, 명리학은 여전히 불법 체류자 신분"이라고 쓴 적이 있다. 명리학을 '혹세무민'과 동의어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강헌은 '도사님'들을 위한 명리학이 아니라, '만인의 명리학'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문제를 안고 이리저리 다른 곳에서 방황하지 말고, 직접 공부해서 자신의 운명을 판단하고 새로운 길을 찾자는 것이다. 그는 "한 인간의 운명이 단순히 태어난 연월일시로 고정되고 결정된다는 이해야말로 명리학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오독"이라며 "명리학은 불완전한 인간의 삶을 아름답고 조화롭게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기껏해야 몇 십 분에 몇 만원을 주고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는 것은 우둔한 일"이라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존재는 자신이며, 우리 모두가 명리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어쩌면 일부 '동업자'들에게 그는 '이단'이자 '배신자'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상담을 하더라도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고, 상대방에게 집중하다 몇 번 졸도한 뒤로는 이제 상담도 사절이다. 대학로에서 3년째 지속하는 강의에서도 "어디 가서 도사 짓 하려고 찾아왔다면 애시당초 꿈을 깨라"가 일성이다. 명리학 강의가 소문나면서 지난달에는 원광대 동양철학과 석박사 과정·졸업생 150여 명을 대상으로 특강도 하고 왔다.
길어야 2년이라던 그의 시한부 인생은 12년째 이어지고 있다. 흥분하면 심장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화내지 않고 살고 있고, 많을 땐 한 번에 12병, 적을 땐 8병씩 평균 주 5회 먹던 소주도 완전히 끊었다. 의사는 운동도 금지시켰다. 덕분에 몸무게는 0.1t을 훌쩍 넘겼지만, 너그럽고 착해졌다는 위로로 '버티며' 살고 있다.
이 순해진 음악평론가의 '명리, 운명을 읽다'는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를 인용한다. "당신 스스로 하지 않으면, 누구도 당신의 운명을 바꿔주지 않는다." 스스로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믿고 자신의 삶과 운명을 개척하는 일. '르네상스인'의 일원으로 그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