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이 어려운 환자에게 '연명(延命) 치료를 중단하라'는 법원 판결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떼고 나서도 환자가 상당 기간 생존하다가 사망했다면 환자는 언제까지 치료비를 부담해야 하는 걸까. 국내 첫 존엄사 사례인 '김 할머니' 사건에서 대법원이 처음으로 기준을 제시했다. 이번 판결은 존엄사를 법제화한 '웰다잉법'이 2018년 시행 예정인 가운데 앞으로 치료비를 둘러싼 분쟁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모(당시 76세) 할머니는 2008년 2월 연세 세브란스병원에서 폐 종양 조직검사를 받다가 식물인간이 됐다. 할머니 자녀는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법원은 2008년 11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판결했고, 이 판결은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국내 첫 존엄사 판결이었다.
한 달 뒤인 6월 23일 병원은 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스스로 호흡을 하면서 6개월 뒤인 2010년 1월 사망했다. 이 과정에 병실료와 영양 공급 등 상당 금액의 치료비가 들었다.
김 할머니가 2008년 2월 입원해 사망 시점까지 총 진료비는 8643만원이었는데, 이 중 인공호흡기를 떼고 실제 사망한 날까지 든 치료비는 6669만원이었다. 유족은 "연명 치료를 중단하라는 1심 판결 이후 발생한 치료비는 낼 수 없다"고 했다. 병원이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유족 주장을 받아들여 1심 판결 때까지 치료비만 내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2심은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실제 죽은 날까지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했고,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
법적으로 병원 치료는 병원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환자는 이에 대해 치료비를 지급하는 계약의 일종이다. 의료 서비스에는 연명 치료뿐만 아니라 생명 유지를 위한 영양 공급,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여러 서비스도 포함돼 있다. 연명 치료를 중단한다는 것은 단지 인공호흡기만 떼는 것이고, 계속 생존한다면 의료 계약은 그대로 유지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웰다잉법'에도 대법원 판결과 마찬가지로 '연명 치료'와 나머지 치료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연명 치료의 범위는 치료 효과 없이 단지 생존 기간을 늘리는 심폐소생술,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등에 국한된다. 연명 치료가 중단되더라도 진통제 투여 등 통증 완화를 위한 의료 행위, 영양분이나 물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다. 따라서 웰다잉법 시행 이후에도 김 할머니 경우처럼 상당 기간 생존한다면 여기에 드는 치료비는 환자 측이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입력 2016.01.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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